농림수산식품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설탕 가격 인하를 위해 추진 중인 ‘설탕 직수입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상반기 안에 해외에서 1만의 설탕을 들여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대 제당업체의 독과점 구조를 깨겠다고 선언했지만 수입 물량 확보와 국내 판매 모두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이 와중에 국내 식품업체들을 상대로 강매에 가까운 선(先)계약을 요구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두 차례 공개입찰 무산

팔리지도 않을 설탕 수입…기업에 강매?
26일 농식품부 산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aT는 지난 22일 홈페이지에 설탕 3000을 판매할 해외 제당업체를 모집하는 긴급 영문입찰 공고를 냈다. 이달 중순 말레이시아 업체와 직접 수의계약을 통해 2000을 직수입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물량 확보에 나선 것. 하지만 이번 공개입찰에는 해외 제당업체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무산됐다. aT는 앞서 지난 15일에도 같은 공고를 냈지만 말레이시아 업체 한 곳만 신청해 유찰됐다. aT는 공개입찰을 포기하고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해서라도 상반기 안에 8000을 추가로 들여오겠다는 방침이지만 목표를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aT 관계자는 “최근 설탕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해외 업체들이 공공기관의 성격상 대금 결제가 까다로운 aT와 굳이 계약을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판매율 28%에 그쳐

팔리지도 않을 설탕 수입…기업에 강매?
설탕 주 수요처인 제빵·제과·음료업계도 정부의 움직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들여오는 말레이시아산 설탕의 경우 무관세로 수입해 국내산 설탕보다 15%가량 저렴하지만 품질이 너무 낮아 재료로 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빵을 만드는 제빵업계는 태국산 등 수입산 설탕을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과자나 음료를 만드는 식품업체들은 국내산 설탕만 쓰고 있다. 한 설탕 수입업체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산 설탕은 입자가 국내산보다 거칠어 케이크나 과자 등을 만드는 데 쓸 수 없다”며 “빵 중에도 소보로빵 등 표면이 거친 빵에만 일부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농식품부가 국내 20여개 중소 가공업체와 체결한 공급계약 물량은 상반기 목표 물량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2800에 머물고 있다.

○업계 “구두계약 한 적 없다”

정부는 이처럼 직수입 설탕에 대한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직접 대형 식품업체들을 불러 구매를 요청하고 있다. 대형 업체의 구매 없이는 목표량을 소진하기 어려운 데다 제당업계를 압박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aT는 최근 롯데칠성음료 해태제과 크라운제과 동서식품 등 식품업체들을 한자리에 모아 정부가 직수입한 설탕의 품질과 가격 등에 대해 설명한 뒤 우회적으로 구매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T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산은 국내산과 입자 굵기만 차이가 날 뿐 당도와 색깔 등 품질에서는 차이가 없다”며 “대형 업체들이 자사 제품에 맞는지 성분 검사를 한 뒤 구매하기로 구두계약을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구두계약을 부인하고 있다. 대형 제과업체의 한 관계자는 “해외산을 쓰려면 품질검사를 해야 하는데 시일이 제법 걸린다”며 “무작정 구매하겠다고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먹거리용 재료 선택까지 강요하는 정부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며 “제당업계를 겨냥한 압박이 엉뚱하게 식품업계로 향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