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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네탓 병' 깊은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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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욱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취재수첩] '네탓 병' 깊은 그리스
    “독일X들 군화발에 또다시 짓밟힐 수는 없다. 독일은 (긴축을 강요하기에 앞서) 2차대전 손해배상부터 먼저하라.”

    12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선 이런 플래카드가 도처에 내걸렸다. 이날 그리스 의회는 유럽연합(EU) 등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내건 긴축안을 표결로 처리, 수용키로 ‘결단’을 내렸다. 같은 시간 도심 곳곳에선 적어도 17채의 건물이 화마에 휩싸였다. 주요 거리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와 이에 맞서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아테네에서만 10만여명에 달했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대가 도심 곳곳을 휩쓸며 무질서한 대혼란이 빚어졌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아테네가 화염에 휩싸였다”며 긴축안 처리 못지않게 ‘폭력’으로 얼룩진 시위 양상을 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날 시위에서 진짜 놀랍고 안타까운 것은 ‘과격함’에 있지 않았다. 어디서도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유럽에서 가장 적게 일하고 비효율적인 국가’라는 비판에 “사회구조를 한번 고쳐보자”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비대한 공공부문과 과도한 복지가 국가경쟁력을 잠식했다’는 외부 지적에도 그리스인들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모습이다.

    대신 일간 에트노스를 비롯한 그리스 유력 언론들은 연일 나치 복장을 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합성사진을 1면에 싣고선 경제난의 책임을 독일 등 외부세력에 돌리기에 바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걸려 있던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나치의 선전문구는 그리스의 긴축을 주장하는 독일과 오버랩되며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시위대가 가장 많이 들어올린 것은 그리스어 팻말이 아니라 ‘라우스(독일어로 ‘떠나라’)’라는 단어였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그리스 시민들의 분노에 이해가는 면이 없지는 않다. 무책임한 정치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안타깝다. 그러나 EU 등 외부에서 선뜻 그리스를 지원하기에 주저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와줘야겠다는 연민이 생길 리 없다. “나치라고 불러서 기분이 풀리면 그렇게 불러라”(독일 일간 디차이트)라는 싸늘한 냉소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맬 용기다.

    김동욱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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