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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친구의 새해 인사 [권지예의 이심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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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아바나에서 맺은 인연
    소니아가 일깨워준 행복의 의미

    권지예 소설가
    쿠바 친구의 새해 인사 [권지예의 이심전심]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다. 그런데 그다음 차례로 쿠바를 언급한 보도를 보고 더욱더 놀랐다. 아 쿠바! 갑자기 소니아의 안위가 걱정됐다. 소니아는 2016년 10월부터 3개월간 쿠바 아바나의 해외 레지던스에 체류할 때 내가 고용한 스페인어 선생이다. 나는 카카오톡을 열어 코로나19 시절 이후 오랜만에 새해 인사와 안부를 물었다. 계속 답이 없었다.

    쿠바는 내 짐작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겁이 많은 내가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단지 스페인어를 조금 안다고, 말레콘과 가까운 현지 빌라를 혼자 독채로 얻었다. 쿠바는 여행자 코스와 현지인 코스가 완전 다르다는 걸 몰랐다.

    나는 타임슬립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자본주의 시스템과 다른 공간에, 1970년대의 시간 속으로 떨어졌다. 충격이었다. 지갑에 달러가 두둑하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곳이 아닌 곳. 대형마트의 매대에 공산품만 드문드문,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휴지와 물, 쌀 같은 생필품. 과일과 채소는 장터를 찾아다녀야 했고 빵과 계란은 현지인이 배급받고 남은 경우에 살 수 있었다. 스스로 생활하고 밥을 먹어야 살아가는 일상이 고군분투하는 모험이 됐다.

    무엇보다 공기처럼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집에는 인터넷 시설이 아예 없고, 국영 통신사 앞에 최소 두어 시간 줄 서서 유료 카드를 사서 공원이나 호텔 등 지정 와이파이 핫존을 찾아다녀야 했다. 정보로부터의 고립감과 외로움은 불편을 넘어 불안을 불렀다. 돈이 있으면 어디서나 물건을 ‘사는’ 나라에서 온 나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구한다’는 현지인의 표현을 곧 이해하게 됐다. 그럴수록 현지인에게 수소문하고 정보를 얻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스페인어, 불어, 영어가 완벽한 소니아를 만났다. 딸애와 동갑이지만 그는 곧 나의 현지인 친구가 됐다. 수업은 내가 알고 싶은 주제를 잡으면 그가 그것을 리포트처럼 컴퓨터로 정리해서 USB에 담아왔다. 그러면 내 노트북에 그걸 띄워놓고 토론 겸 수업을 했다. 소니아를 통해 쿠바를 배웠다.

    그가 매번 정성스레 만들어 오는 교재는 알고 보니 밤중에 친구 집에 가서 주무시는 친구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문서를 작성해오는 것이었다. 그게 컴퓨터가 없는 그에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후에 알았다. 쿠바를 떠나기 전에 나는 소니아에게 내가 쓰던 노트북을 주고 올까, 며칠 망설였다.

    한국에 돌아오니 아들이 얼마 사용하지 않은 아이폰을 새 모델로 교체했다. 소니아의 오래된 2G폰이 생각나서 쿠바 가는 지인 편에 아들이 쓰던 휴대폰을 선물했다. 소니아는 카카오톡 앱을 깔고 기쁨과 감동에 겨워 카톡을 했다. 제가 아이폰을 갖다니 꿈만 같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가끔 소식을 주고받았다. 내가 체류한 10년 전보다 점점 악화 일로를 걷는 쿠바. 똑똑하고 밝고 선하고 한없이 어른스러운 쿠바 젊은이. 생각하면 안쓰러워 가슴 한쪽이 늘 베인 듯 아팠다.

    걱정하던 이틀이 지나 소니아에게서 카톡이 왔다. 현재 아바나 한글 교육기관에서 한글 교사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최근에 유행하는 전염병 치쿤구니야에 걸려 힘들었지만 회복 중이고, 쿠바는 심각한 전력난과 경제 위기를 겪고 있고 앞으로 상황은 더 안 좋아지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거예요.” 젊은 쿠바 친구의 그 말이 내 폐부를 찔렀다. 우리는 끝으로 새해 인사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아 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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