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業-2세가 뛴다] (136) 한일고속 "60년 운송사업 바탕 종합물류·레저社 도약"
최지환 한일고속 부사장(37)은 국제 금융통이다. 지난해 4월 회사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미국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에서 일본 및 아시아 주식투자 담당 이사로 2년을 일했다. 직전 4년은 역시 미국의 유력 자산운용사인 바클레이즈자산운용에서 일본 주식투자를 다뤘다. UC버클리에서 금융공학 석사를 딴 기간까지 합하면 8년 넘게 미국 금융시장에서 자본의 흐름에 대해 감각을 키운 셈이다.

글로벌 금융인으로서 경력을 쌓아 나가던 그가 작년 4월 미련 없이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서였다. 최 부사장은 “가업을 승계하기 전에 좀 더 큰 시장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금융시장으로 갔고 거기서 세계 자본시장에서 꼭대기와 바닥을 함께 경험했다”며 “이런 경험이 아버지 회사를 키워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귀국하자마자 한일고속의 국제화에 진력하고 있다. 그가 3일 영국의 여행사인 ‘에이페리(AFerry)’와 제주~완도 간 카페리 마케팅에 대한 업무제휴 계약을 맺는 것은 그런 행보의 첫 단계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 여행사와도 계약을 맺고 국내 여행지와 여행 노선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최 부사장은 “국내 여객운송사업은 여행 마케팅과 함께 가지 않으면 활로가 없다”며 “해외에 한국의 여행상품들을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물류시장의 활로를 열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고속버스와 카페리가 주력인 한일고속의 사업 부문을 항공물류까지 포함하는 ‘종합물류회사’와 여행사, 호텔·리조트를 아우르는 ‘종합레저회사’ 등 두 축으로 육성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 부사장의 아버지 최석정 대표(70)는 “국내 여객·화물 물류사업은 심각한 성장의 벽에 부딪혀 있는 상태”라며 “최 부사장에게 한일고속의 새로운 50년을 열 돌파구를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일고속이 설립된 것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던 해다. 이 회사는 천일고속 금호고속 등과 함께 고속버스사업에 진출했다. 한일은 고속버스 40대를 도입, 경부선 전 지역에 배치했다. 그러나 한일이 여객운수사업에 진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53년이다. 실질적으로는 올해가 60주년이 되는 셈이다.

최 대표의 부친인 고(故) 최경호 한일여객자동차 대표는 트럭 운송에서 시작해 시외버스로 사업을 확장했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최 대표는 졸업 후 회사에 합류해 부친과 함께 사업 분야를 다시 고속버스(1970년)로 넓혔다. 카페리사업에 뛰어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정부는 당시 ‘여객선현대화계획’에 따라 연안 여객사업을 영위할 기업을 찾았고, 한일고속은 제주~완도 간 여객사업의 수익성을 점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일은 여객·화물 물류 외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최 대표는 “금호 등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때 선친께서는 차입경영의 폐해를 지적하며 본업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셨다”며 “지난 60년 동안 한일이 물류로 확실한 바닥을 다진 만큼 앞으로 50년은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의 날개를 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기반을 더 확실히 다진다는 전략이다. 한일고속은 지난해 영국에서 초쾌속 카페리 ‘블루나래호’를 구입, 제주~완도 구간에 배치한 데 이어 완도~추자~제주 간 운항선인 ‘한일카훼리 3호’도 곧 새로운 선박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또 최근 우등고속버스를 확충, 고속버스 90대 중 83%(75대)를 우등화한 데 이어 이를 조만간 10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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