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百 회장, 첫 M&A 직접 나선 까닭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0)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현대백화점 자회사인 현대홈쇼핑은 13일 의류 중견업체인 한섬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한섬의 지분 34.6%를 4200억 원에 인수, 경영권을 확보했다. 한섬은 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25년 된 유명 패션 업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판교 알파돔시티를 인수한 적이 있지만 중단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2008년 1월 정 회장 취임 후 처음이다. 이번 인수 작업은 정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섬은 일찌감치 M&A 매물로 나오면서 관련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SK네트웍스는 2010년 5월 한섬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수 추진 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는다'며 1년2개월 만에 돌연 협상이 결렬됐다.

SK네트웍스는 최대 주주의 지분과 나머지 지분의 인수금액을 비롯해 사업전개 방식에 대해 수차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섬과의 조율로 수차례 제안이 수정됐지만 결국 인수는 무산됐다. 다만 한섬이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SK네트웍스와의 협력을 약속한 선에서 마무리됐다.

때문에 업계에선 한섬에 대해 '탐나는 회사지만 협상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나돌았다. 한섬은 부채비율이 13.0%에 불과한 우량 회사다. 대기업 계열사도 아니지만 업계 최고 수준인 영업이익률인 2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섬은 타임, 마인, 시스템, SJSJ 등 고급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 브랜드들은 '노세일'을 고수하고 있다. 타임옴므, 시스템옴므 등의 고급 남성의류 브랜드와 발렌시아가, 끌로에, 랑방, 지방시 등의 수입 브랜드 라이선스까지 14개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번 인수와 관련 "이번 M&A는 정지선 회장이 깊숙이 관여했다" 며 "올 초 정 회장은 한섬 정재봉 사장을 만나 직접 담판을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유통업계에서 좀처럼 나서지 않는 '조용한 CEO'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자리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추도식 정도였다. 이런 정 회장이 M&A에 직접 담판까지 지으러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정 회장은 2008년 취임 후 내실을 다지는 '내실 경영'에 집중해왔다. 2010년 현대백화점그룹의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사세 확장을 선언했다. 그룹 성장 축은 유망 사업에 대한 M&A를 통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M&A 주체로는 현대백화점 그룹 중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현대홈쇼핑을 꼽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현대홈쇼핑의 지분은 현대백화점(15.6%), 현대H&S(15.3%), 정교선 부회장(9.9%) 등으로 40% 이상이 현대백화점과 관련돼 있다. 또 지난해 7월 중국 상하이에 TV홈쇼핑 방송을 개국하는 등 계열사 중에서 해외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

현대홈쇼핑은 홈쇼핑 업계에서 '알짜'로 꼽힌다. GS샵, CJ오쇼핑은 매출 기준으로 업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15% 안팎에 불과하다. 반면 현대홈쇼핑은 매출 순위 3~4위권이지만, 영업이익률은 20%를 웃돌아 업계 최고 수준이다.

보유 현금도 8800억 원에 달한다. 이번 인수자금의 대부분은 현대홈쇼핑의 보유 현금으로 알려졌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차별화를 통해 홈쇼핑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M&A에 나서게 됐다” 며 “국내외 브랜드 및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신규 론칭 등을 통해 패션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의류 시장에선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 이랜드, 세정 등이 매출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섬은 중상위권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 SK네트웍스, 형지, 신원 등과 매출 규모가 비슷하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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