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해열제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 밖 판매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내년 8월께 편의점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한약사회는 보건복지부의 청와대 업무보고를 하루 앞둔 엊그제 밤 긴급회의를 열어 국민 안전을 전제로 상비약을 약국 이외의 곳에서 판매하는 방안을 복지부와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행 의약품 2분류(처방약, 일반약) 체계를 유지하고 판매장소는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한정된 장소(편의점 지칭)여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복지부는 약사회 결정을 환영하면서, 2분류 체계를 유지하고 대형마트 판매는 검토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그동안 심야나 공휴일에 안전성이 검증된 상비약조차 살 수 없던 데 비하면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국민 편의 제고라는 당초 취지를 감안할 때 편의점보다 규모가 큰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를 원천 배제한 것은 반쪽짜리 미봉책일 뿐이다. 특히 약사법 개정안에서 의약품 3분류(처방약, 약국판매약, 약국 외 판매약) 안을 철회하고 2분류를 유지키로 한 것은 약국 외 판매약을 법에 명시하지 않고 장관 고시로 낮춰 최소화해보겠다는 의도다. 여론에 떠밀려 안 할 수는 없으니 실속이라도 챙기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다.

새삼 강조하지만 필수 상비약조차 약국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들은 자유판매약을 지정해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게 한다.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는 국민의 80%가 원하는 데도 약사들의 표를 의식한 여야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약사법 개정을 미뤄 맹비난을 샀던 사안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복약 지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약사들이 소비자들의 의약품 오·남용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이번에도 말장난에 그친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