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사이의 시외전화를 자동화하는 경부 간 DDD(Direct Distance Dialing·장거리 자동전화)가 31일 0시를 기해 개통, 우리나라 통신사상 처음으로 시외전화의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1971년 3월31일 한국경제신문(당시 현대경제일보) 3면 머리기사의 내용이다. 기사 말미에는 “DDD는 종전같이 교환양을 불러 시외통화를 신청하던 번거로움을 없애고 시내통화와 같이 상대 지역 가입자를 직접 ‘다이얼링’하는 것으로 서울의 가입자가 부산의 28-1234를 부르려면 072-27-1234를 돌리면 된다”고 적었다. 통화료는 2초에 4원이었다. 시내전화 요금이 1도수(3분)에 3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20배가량 비쌌던 셈이다.

◆‘카폰’이 자동차 가격의 2배

1984년 카폰 가격 400만원…현대차 '포니2'의 두배
지금은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1961년 처음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체신부가 제공한 공중용 이동무선전화 서비스가 최초다. 일반 유선전화로 시외교환원을 호출해 전화기가 있는 차량의 번호를 알리면 교환원이 호출장치 버튼을 눌러 전화와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정치인 등 특수 신분만 사용할 수 있어 1976년까지도 가입자가 348명에 그쳤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이동통신을 도입한 것은 1980년 이후다. 1984년 무선이동통신을 전담하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설립 이후 차량전화 서비스, 이른바 ‘카폰’이 도입됐다. 1984년 1월10일자 한 일간지에는 카폰의 요금제가 결정됐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는 “가입자가 이 자동차 다이얼 전화를 달려면 모두 408만5000원이 들어 부유층 외에는 엄두도 못내는 최고가의 전화가 됐다”고 전한다.

금성전기 현대전자 등 4개 회사가 생산하는 자동차용 무선전화기의 가격은 300만원이었고 설비비 88만5000원, 채권료 20만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전화를 설치하는 데만 4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기본료가 월 2만7000원, 8초당 전화요금이 20원이었다. 1984년 발매된 현대자동차의 ‘포니2’ 모델이 22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화기 가격이 2배 가까이 비쌌던 것이다.

카폰이 휴대전화로 전환한 때는 1988년이다. 그해 7월 SK텔레콤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아날로그 방식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창기 휴대폰은 거대한 크기 탓에 ‘벽돌’ ‘흉기’ 등의 이름을 들어야만 했다. 모토로라가 1983년 만든 최초의 휴대폰 ‘다이나텍’의 무게는 1089g이었다. 가격도 400만원에 달했다. 현대차의 자동차 ‘엑셀’은 500만원 선이었다.

그냥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전화기를 신청하고 물건을 받기까지 2~3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사용자는 이 기간 정부로부터 ‘소양교육’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했다. 국가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화를 이용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럼에도 휴대전화 이용자 숫자는 급증했다. 1984년 카폰 시절 2700여명이던 무선통신 가입자 숫자는 1995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현재 무선통신 가입자 숫자는 국민 숫자보다 많은 5700만여명 수준이다.

◆‘유령진동 증후군’의 시대

‘유령진동 증후군(Phantom Vibration Syndrome)’이란 단어가 있다. 휴대폰을 주로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남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거나 진동이 울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허벅지 부근에 진동이 온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휴대폰이 신체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잠시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도입으로 사람들의 일상은 더 편해졌다. 과거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연락을 할 수 있고 어떤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혜택에 대한 반대 급부로 더 많은 시간을 전화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과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길을 걸을 때,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어떤 일을 했는지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