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김정일 나이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자주 하는 북한은 숫자 풀이도 독특하게 한다. 김일성 생일(1912년 4월15일)만 해도 기발한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우연히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날과 겹친다는 데 착안해 민민전 방송 등을 통해 ‘금세기 가장 격동적인 날’이라는 주장을 폈다. ‘김 주석이 동방에서 인류의 태양으로 탄생하던 날 서방에서는 자본주의 번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것은 동방의 일출과 서방의 침몰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로 통하는 666도 길(吉)한 숫자로 본다. 이는 지난 17일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과 관계가 있다. 6을 세 번 곱하면 216이 되기 때문이다. 216에 대한 해석도 엉뚱하다. 21은 21세기를, 6은 한민족이 세운 여섯 번째의 나라인 사회주의 조선을 뜻한단다. ‘김정일은 21세기 통일된 조선을 이끄는 태양’이란 얘기다. 여기에 ‘백두산 봉우리 수도 신통하게 216개’라는 선전까지 곁들인다.

출생지와 관련된 일화는 더 기상천외하다. 백두산을 오르던 백발노인에게 갑자기 제비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2월16일 ‘세계를 지배할 비범한 장군이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줬단다. 쌍무지개와 광채가 어우러진 가운데 아기 김정일이 백두산 꼭대기에서 향도성(嚮導星)으로 나타났다는 거다. 하지만 김정일은 김일성이 은신중이던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 부근에서 탄생했다는 게 정설이다.

김정일 나이가 69세와 70세로 왔다갔다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원래 출생연도는 1941년이지만 1년을 늦춘 1942년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 김일성 출생연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과의 나이 차이를 아귀가 딱 맞는 30년으로 정함으로써 김정일이 움직일 수 없는 후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북한 보도기관들은 1981년에 이어 1982년에도 김정일이 40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소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 급사(急死)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북아 정세가 혼미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건강이 호전돼 활발한 현지지도를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소식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북한 내부의 변화와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처지다. 정부나 국민 모두 사익(私益) 보다는 대의(大義)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