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다면 이런 식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남아있을까요. 과학기술부가 부활할 겁니다. 아니 현재도 이런 불완전한 형태라면 굳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장관·사진)은 28일 기자와 만나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와 논의 중인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소 지배구조 개편이 제자리를 맴돌다가 물거품 위기에 처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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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현장 연구자들의 마음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라며 “차라리 없던 일로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제 결론을 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올해 3월 상설 국과위의 초대 수장으로 부임한 김 위원장은 한 해 내내 전국 연구현장을 방문해 정책수요자인 연구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탄생한 신생 부처인 만큼 역할과 기능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국회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진행, 연구성과평가관리법 개정을 이끌기도 했다. 191㎝의 큰 키로 중앙부처 공무원 가운데 최장신인 그가 허리를 굽히며 일일이 협조를 구하는 모습은 과학기술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출연연구소 개편 방안은 특정 부처의 논리가 아니라 지난해 민간 전문가들(과학기술출연연발전민간위원회:회장 윤종용)이 심혈을 기울여 내놓고 청와대 역시 취지에 대부분 공감한 사안”이라며 “기획재정부와 교과부도 큰 안목에서 동의한 사안을 지경부의 반대로 인해 전혀 진행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아쉽다”고 말했다.

민간위 안은 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교과부, 생산기술연구원은 지경부, 건설기술연구원은 국토해양부, 식품연구원은 농림수산식품부 직할로 하고 안정성평가연구소는 민영화하되 나머지 20개 출연연(27개 출연연 중 김치연구소 제외)을 국가연구개발원으로 단일법인화해 국과위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안은 철도기술연구원의 경우 기계·전기·소재 기술개발이 중심인 만큼 융복합을 위해 통합법인으로의 이관이 필요하고, 건설기술연구원의 경우 기술 특성상 산업정책이 바로 공공수요와 연결되므로 수요·관리부처의 일원화 필요성에 따라 국토부 직할기관화를 명시하고 있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내놓은 안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민간 전문가들이 현장 실사를 통해 내놓고 부처 대부분이 동의한 개선안이 특정 부처의 이기주의와 탁상행정에 철저히 밀리고 있는 셈이다. 지경부 소속 A연구원 관계자는 “지경부에 소속된 지 4년째 됐지만 지경부 관계자는 만난 적이 없고 교과부만 접촉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출연연구소는 장기적 연구를 위해 가능한 한 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며 “출연연구소 소속은 전통이 있어야 하며 정부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리 뗐다 저리 붙이는 구조로는 공공 연구·개발(R&D)의 효율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은 의회에서 예산을 곧바로 받으며 정권 교체 여부와는 상관 없이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세기 초 건립 당시 상무부에 소속된 이래 소속이 바뀐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은 “지경부의 반대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 R&D 효율화를 위한 큰 관점에서 보면 (출연연구소 소속 일원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