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공권력…경찰, 말로만 불법 엄단
경찰 신임 수뇌부가 불법 집회 · 시위를 엄단해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잇따라 내놨다. 최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집회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무기력함을 의식한 듯 폭력적인 거리시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이강덕 서울지방경찰청장(사진)은 11일 서울지방경찰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평화적 시위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법질서 확립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며 '떼법' 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철규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이날 수원시 경기청사에서 취임사를 통해 "아직도 공공기관에 난입하거나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았다"며 "평화적 집회 · 시위는 적극 보장하되 불법 · 폭력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반드시 사법 처리하겠다"고 경고했다.

집회 · 시위 밀집 지역인 서울 · 경기청장들이 앞다퉈 법질서 확립을 외친 것은 전날 한 · 미 FTA 진압 과정에서 경찰 1명이 폭행당한 사건과 무관치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3기동단 전진욱 경위는 지난 10일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한 · 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한 집회에 출동했다가 시위대 5~6명에게 폭행당했다.

시위대는 경찰을 폭행한 데 그치지 않고 3차선 도로도 불법 점거했다. 경찰은 10여 차례 물포를 발사한 끝에 겨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경찰은 틈날 때마다 "공권력의 상징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실천 의지가 있는지 많은 시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취임 이래 '합법촉진 · 불법필벌' 원칙을 표방했지만 강정마을 · 시위버스 · FTA 등 굵직한 대형집회 때마다 시위대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조 청장은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장시간 도로를 점거하면 물대포를 사용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엄포에 그쳤다는 비판이 많다.

경찰청은 제66주년 경찰의날이었던 지난달 21일 전국 지방경찰청에 도로를 점거하거나 질서유지선을 침범하면 적극적으로 물포를 사용하라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지만 극렬 시위에는 계속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