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관리 `비상'..수출기업 혜택도 크지 않아
"대외악재 많아 당분간 원화 약세 전망"

원ㆍ달러 환율이 나흘째 급등하며 1,2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대한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당분간 원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견해다.

수출기업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물가관리에는 비상이 걸렸다.

◇ "환율, 1,200원대 올라설 수 있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오전 11시 현재 전날보다 26.50원 급등한 1,176.40원에 거래되고 있다.

만약 환율이 이 수준으로 장을 마감하면 지난해 9월 2일(1,180.5원) 이후 1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날 환율 급등은 전날 미 FOMC 회의 결과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이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FOMC에서는 시장의 예상대로 경기부양 방안으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카드를 내놨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정책으로, 침체일로에 있는 미 경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 등 경제전망에 상당한 하방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금융시장의 두려움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외환 전문가들은 남아있는 악재가 쌓여 있는 만큼 원화는 당분간 약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설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포르투갈의 추가 구제금융설, 프랑스 은행의 유동성 부족 우려 등도 어우러지며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더구나 자금 확충이 필요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지난달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로 채권을 팔아치우고 있어 원화 약세의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선물 변지영 연구원은 "원화 약세가 가속화되면 외국인들이 원화 채권 매도를 확대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며 "환율이 1,200원대까지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역외 달러 매수세가 워낙 강해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최대한 많이 오르면 1,250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물가관리 `비상'..당국개입도 효과 없어

환율 급등은 수출기업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외 상황은 이 같은 기대마저도 무너뜨리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의 경쟁 상대인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 대체로 달러 대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만의 차별적인 수출경쟁력 제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구나 환율이 우호적이더라도 해외 수요 위축이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반도체, LCD 등의 가격 급락에서 알 수 있듯 글로벌 수요가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어 수출전선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책임연구원은 "내년에도 미국, 유럽 등의 경기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수출 둔화는 내년까지 이어져 월별 수출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 관리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지난달 5%를 넘어선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추석 이후 농산물 수급 안정과 국제유가 하락 등에 힘입어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환율 급등이라는 뜻밖의 복병이 등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농산물 가격 안정 등으로 공급 쪽의 물가 불안요인이 진정된 반면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 워싱턴DC에 체류 중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오전 신제윤 1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금융시장을 면밀히 주시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이 시장에서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19일 15억달러, 20일 25억달러 가량을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쏟아부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환율은 이를 비웃듯 나흘 연속 급등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 장보형 연구위원은 "시장에서는 정부가 수출을 위해 고환율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있다"며 "다만 2008년 말 금융위기 때보다는 외화 유동성이 훨씬 나은 상황이므로 당시와 같은 환율 폭등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고은지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