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정치권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24일 무상급식 지원 범위를 시민에게 묻는 주민투표가 서울지역 투표소 2천206곳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주민투표 투표권자는 모두 838만7천281명.

주민투표법에 따라 투표권자의 3분의 1인 279만5천761명(33.3%)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투표함을 열어 시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표율이 33.3%에 못미치면 이번 주민투표에 부쳐진 '단계적 무상급식'안과 '전면적 무상급식'안 모두를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정되는 것.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25.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27일 치러진 중구청장 선거 때의 31.4%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야당의 선거 불참 운동에 따른 반쪽 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다.

그만큼 복지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오세훈 시장은 오판도 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의 '단계적 무상급식안'이 야권이 주장하는 '전면적 무상급식안'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야권과 승부가 벌어지면 결국 승리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게 착각이었다. 민주당과 서울시교육청 등이 아예 투표 불참운동을 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투표 불참으로 유효 투표율 33.3%에 이르지 못해 투표함도 못 여는 상황을 간과한 게 패착이었다.

그는 뒤늦게 주민투표에 대한 시민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두 번에 걸쳐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사퇴 카드를 던졌다. 특히 “시장직을 걸겠다”고 했을 땐 눈물을 흘리고 무릎까지 꿇은 채 시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하지만 민심은 끝내 그를 외면했고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는 불발에 그쳤다.

이젠 언제 사퇴할 것이냐를 정해야 하는 결단만 남았다.

24일 오후 8시30분 서울시청 대회의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들어섰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된 직후였다. 오 시장은 양복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A4용지 한 장을 꺼내 담담한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미래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복지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게 돼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민들의 소중한 뜻이 담긴 투표함을 개봉조차 못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투표에 당당히 참여해 준 시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서울시 교육감을 시민 직선으로 처음 뽑았던 2008년 선거 때 투표율이 15%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5%를 넘긴 투표율은 보수층이 상당히 결집했다는 방증"이라며 "투표 결과 야당 측 일방적인 승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사실 서울시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투표율 33.3%’는 넘기 쉽지 않은 벽이다. 2008년 7월 30일, 여야와 진보-보수 진영이 사활을 걸고 선거참여를 독려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 투표율도 15.5%에 머물렀다.

학계에서는 "투표 거부로 민의가 무엇인지 확인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투표하지 말라는 '이상한 투표'는 결국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

182억원의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이 소요되는 주민투표에 정치적으로는 더 큰 갈등과 혼란이 초래됐다.

오 시장의 사퇴 이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는 3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 의미 없이 허공에 버려지고 있는 이같은 국민의 혈세에는 정치권 그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