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입주를 시작한 994가구의 대구시 감삼동 주상복합아파트 '월드마크 웨스트엔드'.분양대행업체가 미분양을 처분하기 위해 30% 싸게 분양하자 200여명의 기존 분양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김미라 입주자대표회장(41)은 "8억3000만원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할인분양으로 5억8000만원으로 떨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엠코는 경남 진주에서 분양 중인 1813가구 대단지 '엠코타운 더 프라하'에 계약조건보장제를 적용했다. 미분양 물량을 싸게 팔 경우 기존 계약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적용한다. 회사 관계자는 "계약 시점에 따른 불이익이 없다고 인식해서인지 실수요자들이 주저하지 않고 계약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규분양 단지에서 미분양 물량이 발생하고,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역(逆)프리미엄'이 두드러지면서 계약조건보장제 분양이 늘고 있다. 할인분양,중도금 무이자 등 추가 혜택을 모든 계약자에게 적용,기존 분양자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분양실적도 거두는 마케팅 전략이다.

◆모든 계약자에게 할인 혜택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계약조건보장제는 지난해 5월 현대엠코가 재건축 아파트 단지인 상도엠코타운에 할인분양을 적용하면서 등장했다.

현대엠코는 조합을 설득해 분양가 대비 11%(가구당 7000만원대)를 깎아주면서 150여명의 기존 계약자에게도 같은 혜택을 줬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상도엠코타운 애스톤파크에도 이 조건을 내걸었다. 김명일 현대엠코 홍보팀 차장은 "할인분양에 나서면 회사가 손실을 보지만 신뢰 유지를 위해 기존 계약자에게도 동일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원은 청주시 율량2지구 대원칸타빌(903가구)에,한라건설은 청주시 용정지구 한라비발디(1400가구)에 계약조건안심보장제를 적용했다. 청주지역에 미분양 물량이 많아 중도금 무이자,할인분양 등을 제공하는 단지가 많아지자 부동층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대원 관계자는 "분양조건이 바뀔 것으로 예상해 계약을 망설였던 수요자들이 계약조건보장제 실시 이후 몰려 5개월 만에 분양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효성은 지난 4월 평택 소사벌지구 '효성 백년가약'을,한진중공업은 지난 5월 광명신도시 '해모로 이연'에 이 방식을 도입해 계약률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짝퉁 보장제 주의해야

계약조건보장제는 흔히 알려진 '프리미엄보장제'와 비슷하지만 장점이 더 많은 마케팅전략으로 꼽힌다. 프리미엄보장제는 미분양 판촉을 위해 분양가 대비 3000만~5000만원가량의 웃돈이 붙지 않으면 이를 분양업체가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부 건설업체는 당초 약속과 달리 "주변 아파트 시세를 판단할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않아 계약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계약조건보장제는 기존 계약자들도 향후 변경되는 분양 조건을 적용받는 만큼 마찰이 생길 소지가 없다"며 "계약자들로서도 불이익 가능성이 적어 다른 비슷한 보장제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고 건설사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계약조건보장제는 윈윈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계약서상에 근거를 명확히 해 또 다른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