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직장여성이 둘째 낳을 수 있도록
지난달 김준규 검찰총장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한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남자 검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집안 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 (여자 검사들이) 일을 안 한다는 건 아닌데,극한 상황에서 (남자 검사와) 차이는 있다. 남성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런 문제는 있다"는 게 발언의 요지였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전체 검사의 30%,신규 임용 검사의 50% 정도가 여성인데 내부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남자 검사는 출세나 사회적 인정을 첫째로 생각하는데 여자 검사는 행복을 추구한다. " 모두 맞는 말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적 경쟁력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이 자칫 여검사가 남검사에 비해 열정이 떨어진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이 됐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지난 70년 동안 추적 조사한 인생성장보고서 '행복의 조건'에 의하면 성공적인 노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인간관계를 꼽았다. 인간관계가 좋고 풍부하며 지속적으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이들이 행복하게 노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자는 집중,여자는 포용'이란 말이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성직자나 과학자는 물론 예술이나 요리 분야에서도 고수는 남성들인 데 비해,아이를 몸속에 아홉 달간 품어 낳고 키워야 하는 여성은 소통,공감,여러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인간관계가 기반이 되는 경영,정치,법조계 등에서 최근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출산파업'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인데 아직도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우리나라 출산율이 반토막이 된 지난 10여년간,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은 그다지 변화가 없는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직업을 가진 여성,특히 공무원 교사 등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전업주부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다는 연구도 있다. 교육비 부담이 워낙 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학력 직장여성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해석된다. 여기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의료기관은 여성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조직이다. 절반 이상 차지하는 간호사는 거의 대부분 여성이고,여의사도 40%에 달한다. 인제대와 백병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셋째 이상 출산하는 교직원들에게 한 달에 30만원씩,초등학교 갈 때까지 6년 동안 한 아이당 2000만원이 넘는 양육비를 지급하는 출산장려정책을 실시한 뒤,아이를 셋 이상 낳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승진 때 아이 엄마들이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여성들이 환자를 돌보고.소통과 공감하는 능력이 남성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아이가 둘 이상 있는 게 직장 여성들의 처지에서도 좋다. 아이가 하나면 엄마가 계속 아이와 놀아줘야 하지만.둘 이상 되면 처음엔 힘이 들지만 조금만 크면 저희끼리 어울리기 때문에 엄마의 짐이 크게 덜어진다. 아이에게도 형제가 있는 것이 더 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세분화된 시장마다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다.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둘째 이상을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을 새로운 저출산 해결책으로 제안하고 싶다. 타깃이 확실하면 거기에 맞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직장 여성에게 더욱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출산장려 정책을 기대해 본다.

백수경 < 인제대학원대 학장/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