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혹은 부자 무상급식 중 하나 선택해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지는 한마디로 '백척간두(百尺竿頭)'다.

4.27 재보궐선거 이후 '좌클릭' 중인 한나라당이 지원 사격은 커녕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덜 나눠주자'는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주민투표에서 승리할 경우 서울시와 시의회 간 대립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더 나아가 내년으로 예정된 차기 대권 도전에도 청신호가 켜지게 된다.

대권 잠룡 중 하나인 오 시장이 최악의 경우 정치적인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 싸움을 자초한 이유는 미래 성장 잠재력을 위해 복지 포퓰리즘을 차단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덜 나눠주자'…불편한 정책 =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가 16일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청구, 주민투표가 본격화됐지만 이를 관철한 오 시장의 여건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오 시장의 뜻대로 초등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을 막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복지 포퓰리즘 기대감을 차단하려면 서울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나서 그 중 과반이 동의해줘야 하는데 두 가지 장벽 어느 것도 넘기가 만만치 않다.

대외적 여건은 우선 오 시장에게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라는 의미로, "포퓰리즘을 차단하자"는 오 시장의 의견은 대중의 일반적인 요구로부터 환영받기 어려운 것으로 비쳐진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빈곤층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덜 나눠주자'는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기를 얻기가 어려운 '불편한' 정책이다.

오 시장은 "3분의 1이 투표장에 나오면 6대4로 이긴다"는 예상을 앞서 내놨고 서울시의회 민주당은 "투표 성사도 어려울 뿐더러 성사가 되면 이긴다"고 자신하고 있다.

◇친정 한나라당 지원 '필수' = 또 주민투표에서 승리하려면 친정인 한나라당의 지원이 필수인데 전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시당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중앙당 차원에서 본격적인 지원사격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7.4 전당대회에서 어떤 지도부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4.27 재보궐선거 이후 '보편적 복지'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계파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변수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반값등록금'을 내놓는 등 소장파와 함께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주도하고 있고,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남경필 의원은 이날 부산에서 "당 대표가 되면 주민투표는 반드시 막겠다"고 재차 말했다.

◇시장·정치인 오세훈 '중대 시험대' = 주민투표가 실시되면 정치인이기도 한 오 시장에게 자신의 향후 정치적인 생명을 좌우할 중대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서 패배하면 '여소야대'의 서울시의회와 서울시 간의 팽팽한 긴장 관계는 서울시의회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서울시장으로서 사퇴 압력을 받을 수 있고 시장으로서 계속 재직하더라도 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에 사사건건 끌려 다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권 잠룡으로서 오 시장의 입지도 상당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

오 시장은 최근 대선 출마와 관련해 "올해가 가기 전에 입장이 정리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어떤 정치적인 책임을 질 것인지 숙고할 것"이라고 답변, 향후 행보에서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상당 부분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오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2번의 중대 시험대에 오른 바 있다.

지난 2003년 5~6공화국 인사의 퇴진을 촉구하며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04년에는 정치인이 법인·단체의 돈을 받지 못하게 하고 후원회를 폐지하는 정치자금법을 동료 의원들의 반대에도 관철하기도 했다.

◇오 시장 "복지 포퓰리즘 종지부 기회" = 오 시장은 이 같은 어려움에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로 "'서민무상급식'인지 '부자무상급식'인지를 시민 손으로 선택하고 더 나아가 무상복지 포퓰리즘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논리를 이날 제시했다.

그는 "주민투표를 통한 서울 시민의 판단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 없이 무조건 퍼주기만 하면 표가 될 줄 아는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에도 경종을 울리게 될 것"이라면서 "나라의 미래를 권력 쟁취의 하위 개념으로 삼는 정치 세력들과 승부를 가르는 역사적인 주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 시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라는 말을 5차례나 되풀이할 만큼 '지속 가능한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퍼주기'식의 복지정책은 당장 인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복지 재원 고갈, 세율 인상 등 구조적인 문제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서울시 이종현 대변인은 "오 시장이 최근 간부회의에서 (주민투표에서) 지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면서 "이는 당장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을 버리고 옳은 길을 가면 국민의 뜻을 얻을 수 있다는 오 시장의 정치 철학이 반영된 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