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축銀사태-카드대란' 악순환 막아야
저축은행 사태로 우리나라 금융업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치권까지 연루된 부정부패 스캔들로 확대되고 있지만 사건발생의 주요 원인은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대형 금융위기는 외환위기나 서브프라임 사태 등 외부 충격에 기인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의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금융위기도 존재하는데,2004년 카드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 역시 내부적인 금융시스템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당초 저축은행이 생겨난 계기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고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제1금융권으로부터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이 사설 대부업체에 기대지 않도록 우량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 저축은행의 모토였다. 그러나 저축은행은 일반 은행보다 높은 예금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수익성에 치중하는 자금운용을 하게 된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는 저축은행이 자산건전성 확보보다는 몸집 불리기에 치중했다.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행의 부도 문제는 반복해서 나타났으며 이때마다 예금보험기금 및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최근까지 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 들어간 국민의 세금만 해도 100조원이 넘는다. 그때마다 정부와 저축은행은 자산매각이나 인수 · 합병 등의 방식을 사용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왔다.

2006년 '88클럽 조치'로 인해 저축은행들은 본격적으로 외형확대에 나서게 됐고,이때 눈을 돌린 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부동산 사업 자체를 담보로 대출해주는 부동산 PF대출은 건설경기 호황 때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침체되고 건설사업이 도처에서 중단되는 시기에는 원금회수마저 불투명할 정도로 리스크가 큰 분야다.

앞서 밝혔듯이 높은 금리로 유치된 예금을 리스크가 큰 사업에 대출하는 저축은행의 영업구조상 더 강도 높은 규제와 감독이 뒤따라야 하는데 오히려 규제를 완화시켜 준 정책실패가 사태 악화의 근본 원인이다. 개인예금을 정부가 보증해주는 예금자보호법과 부실발생시 투입되는 예금보험기금으로 인해 결국 부실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저축은행 부실에 대한 외형적 책임은 감독기관의 감독소홀과 부정 및 비리에 지울 수도 있겠지만,근본적으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저축은행 내부의 사외이사 또는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거나 경영진의 통제를 받는 허수아비 조직에 그쳐선 안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실 저축은행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위법행위를 저지른 인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히 처벌함으로써 금융당국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한 내부통제장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저축은행 사태는 미시건전성 감독과 병행해 거시감독체계도 개선할 것을 감독당국에 일깨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PF 대출의 부실화를 불러온 부동산 경기 침체는 저축은행뿐 아니라 가계의 자산건전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달 29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한 마당에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상승정책이 지속되면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부실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카드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2004년의 카드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 정책당국은 이런 문제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리스크 관리를 점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