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간 임금협상이 재개된 가운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의 단체행동을 벌였다.  /임형택 기자
삼성전자 노사 간 임금협상이 재개된 가운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의 단체행동을 벌였다. /임형택 기자
24일 오후 1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4차선 도로를 점령한 건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일하는 빌딩 앞에서 삼성전자 노조원 700여 명은 ‘노조 탄압 중단하라’는 피켓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이었다. 국내에서 급여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데도 그랬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유명 연예인이 등장했다. ‘뉴진스님’으로 잘 알려진 개그맨 윤성호, 가수 에일리와 YB(윤도현 밴드)가 공연을 펼쳤다. 시위 현장은 한순간에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한 서울 강남 한복판을 휘어잡은 이들의 시위에 인근 직장인은 물론 행인들도 눈을 찌푸렸다. 삼성의 주력 업종인 반도체부문(DS)이 지난해 15조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반도체 수장’까지 전격 교체하는 위기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부적절한 시위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참석자 30%는 민주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의 단체행동에 나선 당시 모습. 사진=한경 DB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의 단체행동에 나선 당시 모습. 사진=한경 DB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손잡고 두 번째 단체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DSR)에서의 첫 행사 후 한 달여 만이다. 전삼노는 오는 28일 사측과 8차 본교섭을 한다는 계획이다.

노사 갈등의 주요 쟁점은 임금 인상이다. 앞서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이 참여한 노사협의회는 평균 임금 인상률을 5.1%로 정했지만, 전삼노는 더 올려달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노사협의회가 아니라 노조가 입금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며 “성과급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지급하고 휴가 개선책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삼노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무산되자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이날 “올해 DS에서 영업이익 11조원이 나더라도 사측은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으로 성과급 0% 지급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영업이익 기준으로 노력한 만큼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3만 명의 노조원 중 대다수가 DS 소속인 전삼노는 지난해 성과급을 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으로 몇 달째 항의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은 투쟁 강도를 높이기 위해 민주노총도 끌어들였다. 행사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200명이 ‘질서유지인’으로 참석했다. 전삼노 측도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민주노총의 후방 지원을 받고 있다고 시인한 뒤 “싸움을 하려면 힘센 조직과 함께해 삼성의 자본이랑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름만 삼성노조 집회일 뿐 참석자의 약 30%가 ‘외부 세력’인 셈이다.

○내부에서도 ‘부글부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위기 국면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장기화하며 한층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1등을 구가하던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AI 시대 필수 반도체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경쟁사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 사업 부진도 지속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번주 이례적으로 DS부문장을 전격 교체하며 경쟁력 회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강경 일변도의 노조 투쟁은 내부에서조차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삼성전자 블라인드엔 ‘연예인 부르라고 조합비 낸 거 아닌데!’ ‘노조가 연예기획사냐? 노조비로 문화 행사 한답시고 뭔 뒷거래를 하는지 모르지’ ‘공연 라인업을 보니까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은데 제2의 이태원 사고가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제 조합비가 이런 가수를 부르는 데 쓰인다 생각하니…’라며 노조를 성토하는 글이 쏟아졌다.

김채연/정희원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