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의 중국산 제품 관세 인상으로 지난해 시작된 서방 기업의 ‘차이나 엑시트’가 가속화하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중국 내수가 둔화하고, 관세 인상으로 수출 전진기지로서의 이점이 퇴색하고 있어서다. 서방 기업의 탈(脫)중국이 빨라지면서 중국 경제 성장이 더욱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내수 식고 수출기지 매력 줄자…脫중국 더 빨라졌다

관세 인상에 달라진 ‘중국산’ 셈법

1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텔란티스는 지난해 10월 중국 전기차 기업 리프모터 지분 21%를 15억유로(약 2조2200억원)에 인수했다.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전기차 전환, 중국 시장에서의 미미한 존재감을 단숨에 뒤집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와 함께 리프모터 자동차를 중국 밖에서 판매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도 확보했다.

스텔란티스의 결정은 8개월 만에 악수(惡手)가 됐다. 유럽연합(EU)이 지난 12일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대폭 인상하면서다. 리프모터 전기차를 유럽에 싼값에 수입하겠다는 계산이 어긋났다. 결국 스텔란티스는 중국 생산분 일부를 폴란드 티치 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번 관세 인상의 최대 피해자인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도 중국 생산 계획을 재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를 인용해 EU가 BMW 미니의 순수 전기차 에이스맨, 메르세데스벤츠의 EQS 등에 최대 세율인 48.1%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BMW, 벤츠, 폭스바겐 등은 중국에서 생산한 전기차 일부를 유럽으로 역수입하고 있다.

미·중 갈등 격화에 기업 신음

격화하는 미·중 갈등도 중국에서의 기업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양국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달 중국에 근무하는 자사 인공지능(AI)·클라우드 컴퓨팅 담당 직원 700여 명에게 미국 호주 아일랜드 등으로 근무지를 옮기라고 권고했다. 미국 정부와 핵심 계약을 맺고 있는 MS가 중국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해 MS는 중국 해커들에게 이메일 시스템을 해킹당했다.

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은 이달 13일 이메일 해킹 사건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MS는 민감 정보를 넘겨달라는 중국 정부 요청을 거절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중국 사업을 영위할 가치가 있느냐”고 추궁했다.

중국 정부는 반간첩법으로 서방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반간첩법은 해외 기구·조직·인사를 위해 중국 국가 비밀 또는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간첩 행위로 규정하는 법이다. 법 개정 당시 간첩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해석이 없어 중국인 및 중국 기업의 민감 정보를 취급하는 기업인은 모두 간첩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니컬러스 번스 주중대사는 지난 5일 CBS 인터뷰에서 “올 3월부터 미국 기업 6~7곳이 급습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중국 당국)은 미국 기업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우리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혐의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국 당국은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정보서비스업체 민츠그룹과 캡비전 등의 사옥에 사전 통지 없이 난입해 직원들을 체포했다.

해외 기업 떠나고 ‘경제 섬’ 되나

서방 기업 이탈로 중국 경제는 더 위축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은 최근 전례 없는 해외 자본 유출을 경험하고 있다. 중국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3분기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순유출을 경험했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빼간 돈이 투입한 돈보다 122억달러(약 17조원) 많았다. FDI는 지난해 6월부터 11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2013년 이후 최장 기록이다.

외국인 투자는 중국 경제 성장의 중요 동력 중 하나였다. 1990년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해외 기업을 유치하며 경제 성장을 가속하고 첨단 기술을 받아들였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순유입 FDI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4년 6%에 달했다. 중국 임금이 상승하고, 현지 기업도 자체 기술력을 갖추면서 지난해 해당 비중은 0.2%로 감소했다. 글로벌무역 싱크탱크 힌리히재단은 “중국이 자국 기술 발전과 효율성 향상을 이끈 해외 기술로부터 멀어진다면 글로벌 공급망 중심이 된 속도만큼이나 빨리 중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