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이탈리아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명문구단 유벤투스를 비롯 AC밀란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 11개팀 단장과 심판이 승부조작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조작이 이뤄진 건 2004~2005시즌 19경기,2005~2006시즌 14경기였다. 유벤투스는 세리에A 챔피언 자격을 빼앗긴 뒤 2부리그로 강등됐다. 루치아노 모지 유벤투스 단장은 즉각 사임했고 지안루카 페소토 이사는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

브라질 축구도 2005년 홍역을 앓았다. 심판 에드밀손이 도박사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11개 경기의 승부를 조작한 여파다. 다른 심판의 양심선언으로 실상이 드러났다. 에드밀손과 브라질축구협회에는 9600만달러(약 1056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국내에선 2008년 아마추어 K3리그 서울 파발FC의 일부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 중국 도박업체에 매수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팀이 해체되고 말았다.

미 행동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은 스포츠 승부조작을 통계학적으로 다뤘다. 1989~2000년 일본 스모 선수 281명이 벌인 3만2000건의 경기를 분석한 결과 부당한 거래가 오갔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레빗이 주목한 건 상위리그 승격 요건인 '8승'을 위해 7승7패 전적의 선수들이 벌인 경기였다. 이들의 승률이 평소 50%대에 불과했으나 8승 경기에선 각각 80%와 73.4%로 치솟았던 거다. 실제로 지난해 스모선수와 지도자들이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스모계가 쑥대밭이 됐다.

승부조작은 스포츠 도박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IOC와 인터폴은 전 세계 불법 스포츠 도박에서 거래되는 자금을 연 1400억달러(약 154조원)로 추정한다. 2007년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에서만 7억달러(약 7700억원)의 불법 축구 도박이 벌어졌다고 한다. 유로 2008 대회 기간 인도네시아에서 1300여명이 14억달러(약 1조5400억원)의 불법 베팅을 했다는 조사도 있다.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500여개,거래 규모는 연 4조원이란 게 경찰 추산이다.

프로축구 K리그가 승부조작 충격에 빠졌다. 브로커 2명 구속, 선수 2명 구속영장 신청에 이어 대부분의 구단에 가담선수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돈다. 승부 조작은 팬들에 대한 배신이자 자해(自害)행위다. 스포츠 존재 이유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참에 뿌리 뽑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의 앞날은 암담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