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주권 행사의 적정성 논란에 중심에 있는 국민연금은 사실상 현 규정상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이에 따르는 이득과 손실은 무엇인지 정리해봤다.

◇ 구조적 한계‥의결권 영향력 미미 =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지난해 9월 현재 140곳에 달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이들 회사의 지분율은 10%에 못 미친다.

지난해 12월 현재 국민연금은 KT(8.26%), 포스코(5.33%), 하이닉스(8.10%) 등의 1대 주주지만, 지분율은 모두 10% 미만이다.

이는 자본시장법상 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 반환 조항 탓이다.

기업의 임직원이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주주가 금융투자상품을 매수한 뒤 6개월 이내에 되팔거나 매도 후 6개월 이내에 사들여 이익을 얻을 경우 임직원이나 주요주주에게 해당이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이 조항의 내용이다.

국민의 돈으로 조성된 기금의 선량한 관리자인 국민연금의 최대 운용 목표는 이익 실현 극대화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 차익 추구 역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특정회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올해 1∼4월 국민연금 보유 상장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반대표를 던진 129건 가운데 소위 '캐스팅 보트'를 던져 원안이 부결된 사례는 현대상선의 정관변경 1건에 불과했다.

따라서 현행법이 바뀌지 않거나 이익 실현 극대화 이외에 '특수목적'을 위한 지침이 추가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 규모가 현재 330조원에서 2015년 500조원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요 경영 사안을 바꿀 만한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렵다.

◇ 국민연금, 의결권 지침 개정 필요 = 보건복지부는 현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의 개정을 감독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주주권 강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오진희 연금재정과장은 "최근 언론의 관심을 받은 주주권 강화 이슈는 정부나 기금운용위원회와 논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기금위는 지난해 초 의결권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풀(pool)을 구성, 기업 사외이사 추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적정성 논란이 일면서 중단시킨 뒤로 다시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유지분이 10% 이하로 관리되는 상황에서 의결권 행사만으로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역할도 제한될 수 밖에 없어서, 향후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하려면 감시자로서 불투명한 경영이나 지배구조에 대한 의견 개진과 함께 사외이사 추천 또는 선임 등을 검토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기업의 사외이사를 추천 또는 파견하거나 기업 경영에 대한 의견 개진을 하려면,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관련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

공단의 한 관계자는 "주주권을 강화하면 기업의 세세한 투자결정에까지 개입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경영진 면담을 통해 경영진이 편법으로 주주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견제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원론적 찬성여론 불구 우려도 여전 = 공적연금이 주주로서 이익 극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연기금 주주행동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캘퍼스(Calpers)를 꼽을 수 있다.

캘퍼스가 지난 2003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장내전문중개업체 7곳을 상대로 부당거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NYSE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회장직과 최고경영자(CEO)직을 분리하고 이사진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승인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캘퍼스는 같은 해 NYSE의 리처드 그라소 회장이 규정을 어기고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은 일을 문제 삼아 공개적으로 사임을 요구, 그라소 가 36년간 유지해온 회장직을 그만두게 했다.

각계에서는 이러한 해외 연기금의 선례를 들어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감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적정한 감시자 역할을 한다면, 장기적으로 연금 수익도 개선될 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사회적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원론적인 찬성 여론은 일부 형성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구조상 주주권 행사가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잠재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주주권 강화에 앞서 세부적인 견제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기업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공단 내에서 사외이사 풀 구성을 검토하던 시점에 KB금융지주 회장의 교체가 거론되자,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경영진이나 사외이사직에 앉히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가입자로 하는 공적연금으로 정부 측 인사 비중이 높은 기금운용위원회와 공단 경영진이 운용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은퇴자와 가족만을 위한 공적연금인 캘퍼스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연기금의 대기업 견제론을 둘러싼 논란 속에 국민연금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려면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세영 기자 thedope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