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 9시30분을 넘긴 브뤼셀 시내는 의외로 한산했다. 시 외곽의 자벤텀국제공항은 물론이고 브뤼셀 관광의 중심지인 '그랑플라스'(대광장) 인근의 중앙역 광장에도 행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분 이상 기다렸다는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기자를 보며 "일본에서 왔냐"고 말을 건넸다. 그는 "원전 폭발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더니 "혹시라도 관광객이 줄어들까봐 걱정"이라며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무정부 상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벨기에의 수도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방인의 눈엔 '정부가 없어도 이렇게 평온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년 6월13일 총선거를 치른 벨기에는 11일 현재 302일째 정부가 없다. 2009년 이라크가 세운 종전 기록(289일)을 지난달 말에 넘어섰다. 유럽에선 1977년 네덜란드의 208일이 종전 최고 기록이다.

벨기에가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남북간 지역 갈등 탓이다. 플라망어(Flemish · 네덜란드어의 방언)를 쓰는 북부 지역은 프랑스어권인 남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북부 지역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총선에서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새 플레미시연대(N-VA)'가 제1당에 오르면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자 사태가 악화됐다. 소수의 정당들이 연립해서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언어권별로 대립하면서 10개월 가까이 연정이 출범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기차에서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넨 한 역무원은 "정치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도 두세 달씩 연정 구성이 늦춰진 적이 여러 차례 있어 새삼스런 일도 아니란 얘기였다.
브뤼셀엔 유럽연합(EU)의 행정부인 유럽집행위원회(EC)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있다. '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며 유럽통합을 상징하는 벨기에가 둘로 갈라진 것은 역설적이다. 기자는 1900년대 초 '하나의 유럽'을 꿈꿨던 수많은 자유 사상가들이 지금의 벨기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졌다. 원대한 이상이 당장 눈 앞의 '빵'보다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박해영 브뤼셀(벨기에) / 국제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