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실직자에 무상교육 '성수동 보일러 슈바이처'
낡고 작은 공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울 성수동 성수역 일대.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일러 시공 · 수리 기술을 공짜로 가르쳐 주는 '사랑의 보일러교실'이다. 낡은 건물에 내부 시설도 볼품없다. 80㎡도 안되는 비좁은 강의실엔 반쯤 뜯다만 중고 보일러 10여대,수북이 쌓인 배관파이프,작업대에 놓인 각종 부품과 공구,용접도구,삐걱거리는 책상들로 가득하다.

고물상 같은 이곳에서 실직했거나 인생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끈이 돼주고 있는 주인공은 이영수 사랑의 보일러교실 교장(56 · 사진).국내 유일의 '보일러 시공 · 수리' 명장(名匠)인 이 교장은 사재를 털어 무료로 가르치기에 '보일러 슈바이처'로 불린다.

이 교장은 보일러 기술을 독학으로 배웠다. 중고 가스보일러를 구입해 밤을 새워가며 뜯고 조립했다. 기술을 체득하는 데 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는 1998년 11월 정부로부터 '보일러 시공 · 수리' 명장에 선정됐다. 이때 받은 포상금은 1000만원.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가족회의를 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였다. 그들을 위해 보일러 시공 · 수리기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포상금에다 그동안 모은 사재 1억5000만원을 털어 넣었다. 공구 책상 배관파이프 용접기 등 보일러 기술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각종 기자재를 샀다. 이듬해 2월 문을 열었을 때 학생은 28명.이 교장은 "지금까지 500여명이 졸업해 100여명은 창업했고 150여명은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사랑의 보일러교실'이 운영자금 부족을 겪고 있다. 한 보일러 회사로부터 보일러를 무상으로 받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교장은 "매달 임대료와 실습기자재 구입비용 등으로 400여만원이 드는데 밀린 임대료가 6개월치"라며 "매일 5~6곳을 방문해 보일러를 설치 · 수리하고 번 돈으로 근근이 운영한다"고 털어놨다.

매일 수업료 900원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보일러 수리 · 교체 비용으로 쓸 봉사료 500원을 받는다. 이 교장은 "실직자들에겐 '자존심'이 생명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받는 수업료"라고 말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