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1.5km 바닷길 '모세의 기적'…내 마음도 파랑처럼 출렁인다
조선시대 세미(稅米) 창고가 있던 무창포.무창포 바다는 벌써 열리고 있다. 물너울이 넘실거리는 바닷길을 따라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가고 있다. 이곳에선 달의 인력이 평상시보다 세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음력 보름과 그믐을 전후로 사나흘 동안 바닷길이 열린다.

주변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길처럼 드러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양동이를 들고 조개 등을 주우러 온 웅천 사람과 관광객들의 호미질이 한창이다. '기적'이 자주 연출되다 보니 미처 자랄 틈이 없어서인지 바지락 씨알이 와이셔츠 단추만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석대도까지 이어진 1.5㎞ 바닷길을 따라간다. 노란 등대와 물속에서 잠행하다 하루 두 번 고개를 쏙 내미는 여들이 길 중간까지 배웅하다 돌아선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물너울에 신발을 적시며 첨벙첨벙 걸어간다. 뜻밖에 얻은 해방감에 내 마음도 파랑처럼 출렁인다. 석대도 앞에서 발길을 돌려 무창포해수욕장에 인접한 독산리로 독살을 찾아간다. 독살은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법이다. 독살 근처에도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부지런히 굴을 따거나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알이 작고 탱글탱글한 굴에서 자연산의 향기가 난다. 신비의 바닷길에 모인 사람들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훨씬 고수 같다.

죽청리 기현마을로 고인돌 군락을 찾아나선다. 마을 앞 정자나무 주변에 10여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매장 부분이 지상에 드러난 탁자식 고인돌이 거대하다. 마을 가까이 바다가 있었던 청동기 시대만 해도 세력이 큰 족장들이 살던 마을인 듯하다. 마을을 마장터라고도 불렀던 걸 보면 언젠가 이곳에 말을 사고팔던 장이 들어섰던 적이 있었나 보다.

◆ 삶이 시들한 사람들이여,이곳으로 오라

무창포해수욕장과 대천해수욕장을 잇는 3.7㎞의 남포방조제를 따라간다. 방조제 초입 월전리,간척지가 되기 전엔 맥도라 불렀던 곳에는 신라 말의 아웃사이더 최치원의 유적이 있다. 너른 간척지에 둘러싸인 맥도는 겨우 집 두어 채 들어설 만한 크기의 작은 동산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들을 샅샅이 둘러봐도 최치원이 썼다는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6두품이라는 출신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경륜을 펼 수 없었던 최치원은 이 절해고도에서 남몰래 제 마음에 난 상처를 다스리고 있었던가.

남포방조제 중간,복주머니처럼 매달린 죽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건너편 용두해수욕장이 홀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너머로 석대도가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선착장 가에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물큰하다. 이렇게 원초적인 삶의 냄새가 서려 있어야 비로소 포구답다.

날씨가 풀린 탓인지 대천해수욕장엔 산책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파도에 씻긴 패각분 백사장이 유난히 정갈해 보인다. 한 아이가 겨우내 갇혔던 마음을 가오리연에 실어 하늘 멀리 보내고 있다. 언제였더라,내가 저렇게 하늘과 소통하는 끈을 잃어버린 게….대천항 방파제에 서서 바라보는 원산도의 산봉우리들이 검정 장화 같다. 오래 바라보노라니 장화 신은 원산도가 2.4㎞의 수평선을 철벅철벅 걸어서 항구로 들어올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대천항 어시장은 언제 와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꽃게 해삼 아귀 우럭 도미 등 물 좋은 해산물을 사려는 사람들과 상인이 밀고 당기며 벌이는 흥정이 흥미진진하다. 긴 실랑이 끝에 극적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재래시장이야말로 시장경제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풍경일 것이다.

◆장엄하여라,천년의 일월을 지켜온 폐사지여

성주터널을 지나 성주사지(사적 제307호)로 향한다. 성주천을 따라 성주산으로 가는 길 왼편에 홀연히 탑들이 옹기종기 서 있는 너른 터가 나타난다. 통일신라 말 교종에 염증을 느낀 스님들이 선종 사상을 펼치고자 열었던 구산선문 가운데 낭혜화상 무염(801~888)이 개창한 성주산문이 있던 곳이다. 무염이 개창하기 전엔 오합사(烏合寺)라 했다. 옥마산(597m)과 성주산(689m)에 둘러싸인 첩첩산중 오지였으니 당연히 '까마귀나 모여드는 절'이었을 게다.

성주사는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탑 3기,석등,석불입상만을 남겨놓은 채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다. 석등과 오층석탑이 지키는 금당터로 들어서자 중앙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석조연꽃대좌의 하대석이 눈길을 끈다. 거대한 장육상(선키가 4.8m)이 앉고도 남을 만한 크기다.

금당 뒤에는 한 사람이 조성한 듯 모양이 비슷비슷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3기가 서 있다. 상륜부를 잃어버려 조금 모양새가 빠진다. 동 3층석탑 옆에는 조선 중 · 후반기의 것으로 보이는 석불입상이 서 있다. 코 등 얼굴을 온통 시멘트로 발라놓아 인상이 험악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매우 인자한 얼굴이다.

서탑 뒤편 보호각 안에는 높이 4.55m에 달하는 낭혜화상탑비가 서 있다. 머리에 둥근 뿔이 난 데다 얼굴 일부가 깨진 받침돌의 거북이 분기탱천하여 금방이라도 입에서 불을 뿜을 듯한 모습이다. 최치원은 비문에서 '때로는 물을 길어 나르고,땔나무를 나르는 일까지도 직접 하면서 산이 나 때문에 더럽혀졌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하였다'고 무염의 인품을 적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진골이었던 낭혜화상 가문이 아버지대에 이르러 6두품으로 낮아진 내용이 있어 신라 골품제의 변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무염(無染)이 된다

1000년 전 칠흑 같은 어둠 속,석등의 불빛만 은은하게 타오르던 성주사의 밤.두 눈을 지그시 감고 선정인을 한 채 삼매에 든 무염 낭혜화상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쩌면 무염이란 법호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지 모른다. 제아무리 속인이라 할지라도 이 첩첩산중의 절간에 들면 더 이상 물들 일이 없을 터이니 저절로 무염이 될 게 아니겠는가.

5리가량 떨어진 성주산 기슭 백운사로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를 만나러 간다. 갑자기 날이 흐려지더니 산길이 어둑어둑해진다. 부도는 큰길에서 약간 벗어난 오솔길에 있다. 정연당(淨蓮堂)이란 법명으로 미루어 볼 때 부도의 주인공은 비구니였던가 보다. 이토록 첩첩산중에 거처할 정도라면 비구니일지라도 호랑이 같은 성정을 지닌 채 용맹정진하던 스님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범일 국사가 창건했다는 백운사가 모습을 나투신다. 살림집을 겸한 인법당(因法堂)과 편액도 없는 작은 전각이 전부다. 절집에는 아무 인기척이 없다. 눈 덮인 성주산 봉우리가 흐름을 잠시 멈춘 흰 구름 같다. 마냥 떠돌기만 해서는 깨달음이 없음이여.무염으로 올라갔다가 어둠에 물든 유염(有染)이 되어 터덕터덕 산을 내려온다.


지하 400m 수직갱 체험, 보령 석탄박물관 가볼만…돼지고기로 국물 낸 얼큰 짬뽕 '맛이 끝내줘요'

◆ 맛집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함민복 시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부분)

며칠 전 우리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가난의 추억을 슬프지만 아름다운 시로써 상기시키는 함민복 시인이 결혼했다. 그가 행복하기를 기원하지만,슬픔으로도 배가 부르던 순간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은 우리의 영혼을 씻겨주는 강력한 세정제이기 때문이다.

성주면 성주리 황해원(041-933-5051)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메뉴도 짬뽕 자장면 주류 딱 세 가지뿐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열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 기다림은 색다르고 맛있는 짬뽕을 맛보기 위한 가외의 비용이다. 해물로 국물을 내는 보통 짬뽕과 달리 이 집의 짬뽕은 돼지고기를 넣어 국물을 낸다. 얼큰하면서도 약간 텁텁하다. 준비한 물량이 떨어지면 장사 끝이다. 짬뽕 5000원,자장면 4500원.

◆여행정보

무창포 바닷길을 체험하기엔 음력으로 보름날이나 그믐날을 전후해서 2~3일 정도가 가장 좋다. 물 때는 저조 전 두 시간부터 저조 후 한 시간까지가 좋다. 고조(만조)는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온 때이며 저조(간조)는 물이 가장 많이 빠진 때를 가리킨다. 호미나 구럭 등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특별한 준비는 필요 없다.

성주사지에서 가까운 성주면 개화리 석탄박물관도 들려볼 만하다. 1995년에 개관한 보령석탄박물관은 광물,화석 및 측량,굴진,채탄,운반장비 등 3800여점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다. 실내전시장 2층에서 국내 최초로 수직갱 지하 400m를 내려가는 승강기를 재현한 엘리베이터를 타면 바로 모의갱도가 나오고 모형으로 재현한 채탄 작업 광경이 펼쳐진다.

개관시간은 3~10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11~2월 오후 5시까지.월요일과 공휴일 다음 날은 휴관.입장료 어른 1000원,어린이 500원.(041)934-1902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