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모든 게 변해"..광장 예전 모습 되찾아
시민들, 광장 금요집회 지속하며 차질없는 개혁 압박
정치개혁 진행중..7-8월 총선.대선 실시 전망

"그날 이후 모든 게 변했습니다.우리는 더 이상 호스니 무바라크 체제의 노예나 짐승이 아닙니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중심지인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만난 상인 아흐메드 무함마드(42) 씨는 10일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퇴진한 지 한 달째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이제 우리는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 간 이어진 비상계엄법 아래에서 억눌린 채 숨죽여 살아왔던 이집트 시민들은 지난달 11일 무바라크가 사임을 발표하고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로 떠난 뒤 `카이로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헌법 전문가들로 구성된 개헌 위원회는 지난달 말 현행 헌법의 독소 조항을 수술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과거 정권의 나팔수였던 언론 매체는 민의를 정확히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거리에서는 새 시대를 제대로 열어나가 보자는 시민들의 애국주의적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다.

실제로, 카이로 시내에서는 거리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남녀 청년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빨간색과 흰색, 검은색 등 3색으로 된 이집트 국기나 이들 3가지 색으로 만든 티셔츠, 머리띠를 파는 노점상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3색이 칠해진 가로수도 쉽게 볼 수 있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차체나 유리창에는 `1월 25일'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날은 바로 이집트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첫날이며, 이로부터 18일 만에 무바라크 체제는 무너졌다.

구체제를 무너뜨린 혁명의 진앙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는 등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이면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여는 것은 혁명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시민 정례집회는 과도기 권력을 쥔 군부에 정치 개혁 프로그램을 차질없이 수행토록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다.

언론사 `움마 프레스'의 아흐메드 샤즐리 편집장은 "군부가 현재까지 정치개혁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며 "오는 19일에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치러지고, 그 이후 순조롭게 정치일정이 진행된다면 7월쯤엔 총선, 8월엔 대선이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시민혁명 때 사흘간 타흐리르에서 `노숙 시위'에 참여했다는 샤즐리 편집장은 "지난 시위 과정에서 내 동생은 최루탄에 맞아 왼쪽 눈을 심하게 다쳤다"며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상을 자유에 대한 세금이라고 생각하며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 내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서도,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진 뒤 각계각층으로부터 수십 년간 억눌렸던 욕구와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바람에 이집트 사회는 `혁명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저임금에 시달려왔던 근로자들은 급여인상과 복지혜택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다수 무슬림과 소수 콥트 기독교 공동체 간의 갈등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에는 무슬림 폭도의 방화로 교회 건물이 불에 탄데 대한 항의로 콥트 기독교인 1천여 명이 카이로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무슬림 주민들과 충돌해 13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다쳤으며, 9일에는 괴한 수백 명이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이집트 사회가 아직 충분히 안정을 되찾지 못하다 보니 주요 외화수입원인 관광산업은 여전히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고, 지난 1월 27일 문을 닫았던 증권거래소는 재개장을 무기한 연기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한 여행사에서 일하는 카바시 무함마드(27) 씨는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남은 5개월이 너무 길다"며 "시민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자제한다면 사회가 더 빨리 안정을 찾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샤즐리 편집장은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이다.

경찰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치안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며 "군부와 과도 정부는 한 걸음씩 착실히 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포함, 구체제의 모든 비리 인사를 단죄하는 것도 이집트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뒤 "길게는 20년, 짧게는 1년 뒤에 이집트를 보게 된다면 과거와 단절되고 더 나아진 사회가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