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개헌 문제를 두고 알듯 모를 듯한 발언을 계속하면서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여권의 개헌논의 주장은 정권연장 기도"라며 거듭 쐐기를 박고 있는데도 모호한 태도는 그대로다.

그는 21일에도 `만약'이란 가정법을 썼다.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약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민생문제가 블랙홀로 빠진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다"는 알쏭달쏭한 입장을 내놨다.

손 대표처럼 "절대 안된다", "종지부를 찍었다"는 게 아니라 "개헌은 `좀' 물건너갔다.

실기에 `방점'을 찍고 싶다"는 식이다.

개헌 논의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아닌 발언이다.

`개헌 전도사'라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설에 박 원내대표의 여의도 집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집에 없어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 이후 접촉 빈도와 농도가 자주, 그리고 꽤 짙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회동 불발 뒤인 6일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고, 이 장관이 영수회담 성사를 위해 "이회창 선진당 대표도 참석하는 청와대 조찬 회동 후 대통령과 손 대표가 별도로 본다"는 절충안을 제시하는 등 막후에서 뛰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냉각됐던 여야관계의 해빙 무드 속에서 개헌에 대한 박 원내대표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KBS 인터뷰에서는 "만약 한나라당 다수가 우리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요구한다면 개헌특위 구성에 응할 수 있다"면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분권형이 바람직하다는 지론을 밝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라고 소개했지만 "분권형 내각제를 할 때가 됐다"고 치고 나갔다.

이 언급은 친이계의 개헌론이 분권형이란 점과 맞물려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박 원내대표가 이 장관과 교감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여권 교란용'이란 해석도 있지만 친이, 친박 중심의 개헌논란에서 민주당의 설 땅이 좁다는 점에 비춰보면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민주당 내에서는 개헌논의가 성숙되면 박 원내대표가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호남권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헌을 관철한 뒤 그 자신이나 호남의 대표주자가 연정을 통해 총리를 한다는 시나리오가 심심찮게 거론돼왔다.

그가 차기 대선 정국에서 권력의 방향타를 쥔 당대표가 되려한다는 시각이 팽배한 것도 이런 관측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분권형 내지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데 그의 현실적 고민이 있어 보인다.

이는 친이계도 마찬가지다.

내각제는 90년 민주.민주.공화 3당 합당, 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05년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 역사적 분수령 때마다 각 정파가 시도했지만 번번이 국민 정서와 `현재 권력'에 막혀 좌초됐었다.

호남의 한 다선 의원은 "박 원내대표를 비롯한 호남의 다수는 `당분간 호남 인사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현실론 때문에 분권형 개헌에 기울어져 있다"며 "그러나 친이계 역시 우리와 처지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개헌논의가 정략적 의도로 비쳐지고 있어 물밀 대화가 있다고 해도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