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불법체류자가 美빙상 영웅으로 '우뚝'

15년 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한국계 쇼트트랙 선수 사이먼 조(20.한국명 조성문)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월드컵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성문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5차 대회 남자 500m에서 42초157만에 결승선을 통과, 폴 스탠리(영국)를 0.117초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기회의 땅'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이민자의 아들이 갖은 역경을 딛고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는 순간이었다.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성문은 먼저 미국에 가 있던 아버지와 함께 살고자 15년 전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 한동안 불법 체류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조성문은 11살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한때 수도와 전기까지 끊길 정도로 어려운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부모의 헌신적인 지원 덕에 스케이트 선수의 꿈을 키워나간 조성문은 2007-2008시즌 때 15살의 나이로 대표선수에 뽑히면서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 사상 최연소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주니어 시절부터 미국 내 최강자로 군림해 왔던 만큼 곧바로 '에이스'로서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2008-2009 시즌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다시 고난을 맞았다.

대표 선수 자격을 잃으면서 미국올림픽위원회(USOC)의 지원금도 끊겼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겹쳐 아버지의 사업까지 기울어 잠시 스케이트를 그만두기도 했다.

미국의 쇼트트랙 스타 아폴로 안톤 오노와 장권옥 코치 등 한국인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난 조성문은 2009-2010 시즌 미국 국가대표로 복귀하면서 재기했다.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5,000m 계주 동메달을 따내며 큰 무대 경험을 쌓은 조성문은 올 시즌에는 월드컵 1차 대회 500m와 1,500m 은메달을 따내는 등 호시탐탐 정상 등극을 노려 왔다.

은메달과 동메달만 5개를 따낸 끝에 조성문은 결국 이날 남자 500m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시즌 미국 남자 대표팀이 수확한 두 번째 금메달로, 우상이자 동료였던 아폴로 안톤 오노의 뒤를 이을 유력한 '새 간판'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조성문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미국 사회가 이민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며 '이민 개혁' 움직임에 힘을 보태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내건 조성문이 앞으로 한국 대표 선수들과 펼칠 선의의 경쟁이 기대를 모은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