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제(春節 · 설)는 폭죽의 시즌이다.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15일간은 깊은 잠을 포기해야 한다. 밤이 되면 큰 길가는 폭죽 연기로 꽉 차고 하늘엔 울긋불긋한 무늬가 수를 놓는다. 전쟁터에서나 들을 수 있는 포성도 끊이지 않는다. 폭죽은 춘제를 시끌벅적한 축제의 마당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중국인에게 폭죽은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도구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도 폭죽은 그래서 사용된다. 중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폭죽을 분리해 내기란 어렵다. 베이징시가 랜드마크로 건설하던 CCTV 건물이 폭죽으로 불이 나 사라지고,작년엔 허베이성의 고성이 불에 타 전소됐지만 폭죽놀이를 금지시키진 못했다. 올해도 섣달 그믐날 선양의 5성급 호텔이 폭죽의 불꽃에서 불이 옮겨붙어 모두 타버렸다. 이날 저녁에만 폭죽으로 2명이 숨진 베이징에선 2000t이 넘는 폭죽 쓰레기가 수거됐다.

이렇듯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폭죽놀이가 과시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통에 3000위안(51만원)이 넘는 폭죽을 시장에서 야채 사듯이 집어드는 사람은 흔하다. 베이징 하이뎬구에 사는 왕쥔씨(38)는 "이번 춘제 때 쓰려고 산 폭죽이 3만위안어치가 넘는다"며 "매일 두 통씩 보름간 터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많이 터뜨리느냐는 질문에 "요즘은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폭죽놀이가 과시용으로 전락한 것은 중국인 특유의 '체면문화'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8명 기준으로 38만8888위안(6600만원)짜리 녠예판(年夜飯 · 섣달 그믐날밤 가족이 함께 먹는 식사)이 등장한 것을 보면 체면문화는 졸부근성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과시를 위해 몇 달치 월급을 한꺼번에 털어 단 몇 분 만에 하늘로 날려버리는 사회라면 문제가 적다고 할 수 없다.

베이징청년보는 "춘제가 과소비를 조장하는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춘제에 농촌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보냈다는 기사가 중국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리지만,가난한 사람들의 소외감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중국인들의 과시문화에 대해 중국 정부가 대책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