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자국을 찾은 가운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20의 시험 비행을 '강행'함으로써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은 11일 낮 12시께 쓰촨성 청두 비행장에서 젠-20의 시험 비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 시각은 공교롭게도 젠-20의 개발을 우려하던 게이츠 장관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기 불과 몇시간 전이어서 중국이 차세대 전투기의 극적인 등장 효과를 노리고 절묘한 '택일'을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만 무기 판매 문제로 1년간 중단됐던 미중 간 군사 대화가 어렵게 재개된 시점에서 돌출한 중국의 '실력 과시'에 미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게이츠 장관이 후 주석과 회담에서 마치 따지는 듯한 뉘앙스로 자신의 방중에 맞춰 젠-20의 시험 비행을 했느냐고 직접적으로 질문한 것은 미국 측의 불편한 기류를 반영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론 중국은 표면적으로 '무력시위' 의혹을 극구 부인하면서 젠-20의 개발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후 주석이 직접 게이츠 장관에게 시험 비행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하는가 하면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도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의 국방 정책은 방어적이고 어느 국가도 겨냥하지 않는다"며 게이츠 장관의 방중과 젠-20의 시험비행 사의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서구 언론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런 중국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국방장관의 방문에 맞춰 젠-20의 시험 비행을 실시하고, 이례적으로 이를 국가원수의 입을 통해 확인해준 것은 극적의 연출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만 무기 판매, 남중국해, 미국 항공모함의 황해(서해) 진입 등 문제를 놓고 작년 내내 갈등을 빚었던 미국을 겨냥해 중국이 군사능력 발전상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비록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전체적인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 1년간 냉각됐던 군사 관계를 복원하지만 앞으로 대만 문제,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을 엄중하게 침범할 때는 이에 맞설 '자위력'을 계속 강화할 것임을 과시한 셈이다.

미국의 5세대 스텔스기인 F-22 랩터의 적수로 등장한 젠-20은 스텔스 기능에다 공중 급유를 통해 작전 반경이 중국 영공을 훨씬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전해져 향후 작전화될 경우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중국을 에워싸고 있는 미군은 절대적 제공권 우위를 잃게 될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이 개발 중인 '항공모함 킬러' 미사일 둥펑-21D가 실전 배치되면 미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서태평양 전략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우려를 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줄곧 중국 군사 분야에 대한 불투명성을 지적해왔다는 점에서 젠-20의 전격적 등장을 통해 중국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1면에 젠-20의 등장에 관한 기사를 싣고 "서방은 전에는 중국이 국방 정책이 불투명하다고 원망하더니 젠-20 소식이 흘러나오자 이번에는 중국이 대외 과시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젠-20이 작전화 단계까지 가려면 수년이 더 걸릴 것이며 미국과의 기술 격차도 크다며 몸을 낮추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젠-20 시험 비행의 성공으로 중국은 군용기 산업에서 세계 1류 수준에 가까워지게 됐다"며 "이는 기뻐하고 축하할 일로 중국인들에게 큰 격려가 됐다"고 환영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국의 젠-20 개발이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한국 등 인접국들이 차세대 전투기 획득을 서두르도록 자극하는 등 동북아 군비 경쟁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가장 예민한 일본은 차세대 주력 전투기(FX)로 미국 등 9개국이 공동 개발하고 있는 F-35, 영국 등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로파이터', 미국의 FA18E/F 등 3개 기종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지만 F-22 구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달 국가방위 정책의 초점을 구소련의 냉전 위협에서 최근 해상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으로 전환키로 하면서 잠수함, 전투기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키로 한 상황이다.

이 밖에도 홍콩의 명보(明報)는 산시(陝西)성 산시TV를 인용, 자오정융(趙正永) 산시성 부서기 겸 대리성장이 시안하이테크구역에 위치한 중항비행기(中航飛機)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이 대기층을 넘나드는 비행기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항공 전력 외에도 중국의 최근 잇따른 군사력 증강이 동북아 군비 증강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옛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6만t급 미완성 항공모함인 바랴그(Varyag)호를 개조해 연내에 훈련용으로 진수하는 한편 국산 항모 건조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