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기수로 변신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8일 부정선거 시비로 얼룩진 최근 총선을 `소극(笑劇)'이라고 지칭하며 내년 대통령 선거의 거부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집트 야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엘바라데이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영상 메시지에서 "우리는 소극의 조연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나는 여러분이 출마도, 투표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선거를 거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엘바라데이는 "현 체제는 변화를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행진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권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만약 우리의 행보가 저지된다면 우리는 평화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 체제는 (개혁을 수행할) 준비도 안 됐고,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변화가 없는 현상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집권 세력을 몰아붙였다.

지난해 11월 IAEA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올해 2월 조국 이집트로 돌아온 엘바라데이는 정치개혁운동 조직인 `변화를 위한 국민연대'를 창설, 헌법 개정과 자유선거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이집트에서 29년째 존속되고 있는 비상계엄법의 폐지와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한 독립적 감시 보장, 대통령의 3선 연임 제한 등을 요구하고 있고, 이런 요구가 관철되어야만 내년 대선에 나설 것임을 밝혀왔다.

엘바라데이는 지난 9월에는 이번 총선을 거부할 것을 야당과 유권자들에게 촉구했었다.

무슬림형제단과 와프드당 등 주요 야권은 이런 그의 요구를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지난달 28일 치러진 총선에 참여했으나 1차 투표 후 집권 세력의 선거부정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면서 2차 결선 투표에는 불참했다.

1981년부터 권좌를 지키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83%를 차지했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