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워싱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결단의 순간들(Decision Points)'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다.

압권은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 세력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펜타곤을 납치 여객기로 강타한 직후를 다룬 부분이다. 부시의 고뇌와 결단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목이다. 그는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긴급보고에 육필로 대국민 성명문을 작성해 발표,국민을 안심시키는 소통력을 보였다. "피가 끓었으나 위기 관리가 급선무였다"고 회고한 그의 말대로라면 냉철함이 돋보였다.

부시가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는 대목은 교전규칙이었다. 그는 미 상공에서 응답하지 않는 항공기는 격추시켜야 한다고 지시해 놓고선 속으로 흔들렸다. '외국 여객기를 격추시키면 외교적인 영향은,승객들에 대한 책임은,테러리스트가 장악한 비행기를 너무 늦게 요격한다면….'

긴박한 국가 위기는 지도자가 당장 있어야 할 '현 위치'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당시 플로리다주에 있던 부시는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올랐지만 어디로 향할지 결정해야 했다.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이 수도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과 적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신변안전부터 챙겨야 하는 것인가. '

위기 시 무비유환의 허점은 작지만 긴요한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에어포스원 기내에 테러 현장을 파악할 위성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테러 당일 밤 10시 백악관이 공격받고 있다는 급보에 허둥댄 장면은 지금보면 차라리 코미디였다. 부시는 반바지와 T셔츠를 걸친 채 지하벙커를 향해 맨발로 뛰었다고 술회했다.

부시에게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래 처음으로,그것도 미국 본토가 당한 공격에 국민을 안정시킬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과서도,매뉴얼도 없었다. 그는 "자유와 폭압 간 충돌은 오로지 전쟁과 승리로 결정되는 문제라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가르침에 결의를 다졌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부시가 내린 결정은 세 가지였다. 미국민들과 전 세계,테러리스트들에게 재공격을 허용하지 않겠고,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시작됐으며,미 경제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는 강하게 기강을 잡았다. 테러공격이 일어난 뒤에야 조사하느라 부산떨지 말고 사전에 이를 무력화시키라고 지시했다. 국장은 지시를 복창했고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무엇보다 부시가 내린 최고의 결정은 추가 테러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아 지도자의 모습을 보인 일이었다. 그는 9월14일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처참히 붕괴된 현장에서 미국민들을 결집시켰다. 구조활동을 벌이던 소방관들로부터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격려도 받았다. 한 소방관은 "이런 짓을 한 개자식들을 찾아내 응징하라"고 응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응징하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부시가 현장에서 새삼 확인한 미국민들의 힘은 더 있었다. 실종자센터에서 한 여인은 그의 손에 소방관 배지를 주며 "내 아들이요,그를 잊지말라"고 당부했다. 무역센터 피격 소식을 듣자마자 자원해 구조현장으로 뛰어들었다가 실종된 아들이다.

국가 지도자란 누구이고,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세계 최강국 리더였던 부시가 털어놓은 결단의 순간은 훌륭한 참고 사례가 될 만하다. 무엇보다 대북 응징을 새로 다짐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