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의 아찔했던 경험 때문인지 올해는 특히 독감 예방접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신종플루는 물론이거니와 A형 간염과 수족구병(手足口病)도 지난해 상반기에 핫이슈로 떠올랐던 '전염성 질환'이었고,그만큼 '전염병'에 대한 관심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이 같은 전염병 이슈는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적으로 퇴치 단계에 있었던 홍역이 다시금 확산되고 있는 데다 아시아 지역에서 모기가 옮기는 뎅기열 및 말라리아가 증가한다는 소식도 있다.

전염병은 인류와 역사를 공유해 왔지만 최근 한 세대 동안 위생환경의 개선과 의학 발달에 힘입어 과거보다 우리 삶에서 죽음을 멀리 밀어낼 수 있게 됐다. 역병이 창궐하던 18세기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스물네 살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지난해 한국인 평균 수명은 80세로 높아졌다. 이는 우리 몸 안에서 병원체와 맞서 싸우는 '보디가드' 가 되어줄 면역항체를 만들어 질병 예방의 첨병 역할을 하는 백신의 공이 컸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천연두가 18세기 유럽에서만 6000만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하니 지금까지 백신이 구한 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셈이다.

올초 100억달러를 기부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멜린다 게이츠는 "소량만으로도 일생 동안 무서운 질병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백신은 기적이나 다름없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백신 개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만약 백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백신의 갈 길은 멀고 그 가치가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서 매년 20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신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된 것은 예방의 가치다. 예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사실 대부분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중요성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혹자는 병에 걸리더라도 잘 치료하면 되지 굳이 돈을 들여 아픈 주사를 미리 맞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영국 속담에 "1온스의 예방이 1파운드(16온스)의 치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질병을 친구 삼아 살아야 하는 기간이 더 길어진 만큼 치료에서 한발 나아가 예방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는 유럽 주요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백신접종사업 확대와 질병예방캠페인 등의'예방'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방이야말로 적은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진호 < GSK한국법인 대표 Jin-ho.kim@g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