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성서공단에 있는 의류직물 생산업체 ST원창은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드는 바람에 요즘 야근을 밥 먹듯 한다. 200여대의 직기가 들어찬 공장엔 노스페이스 프라다 등 유명 업체의 주문 납기를 맞추기 위해 직기들이 쉼없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창고는 공정에 투입될 원료와 생산 제품으로 꽉 차 있다. 채영백 대표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상반기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의 호황기를 떠올릴 만하다"고 덧붙였다.

대구 · 경북의 섬유산업이 10년여 만에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는 올 상반기 대구 · 경북지역 섬유제품 수출이 13억9400만달러를 기록,전년 동기 대비 27.8% 급증했다고 27일 밝혔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관계자는 "하반기에 수출 물량이 몰리는 점을 감안할 때 올 연간으로 11년 만에 3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섬유 수출은 1999년 39억6300달러를 마지막으로 30억달러 고지를 밟지 못했다. 수출 최고치는 1995년의 55억달러였다.

대구의 섬유산업이 '10년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살아나고 있는 것은 피나는 구조조정과 신기술 개발로 후발국을 따돌릴 정도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한계기업 퇴출,설비 매각 · 이전 등 고강도의 구조조정으로 군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산업용 섬유 등 새살이 돋아나게 만든 결과다.

다른 산업과의 융 · 복합화를 통한 산업용 특수섬유 개발도 대구 섬유의 부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화섬유는 차도르용 블랙 직물만으로 중동에 지난해 31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 회사는 최근 슈퍼섬유 소재를 이용해 자동차용 구동벨트와 안전벨트 생산에 뛰어들었다. 류종우 대구시 섬유패션과장은 "4~5년 전만 해도 거의 전무했던 산업용 섬유 비중이 현재 10% 내외까지 늘었고 앞으로 매년 9%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이 분야가 업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섬유업계 내부의 업종별 전문화도 경쟁력 향상의 요인으로 꼽힌다. 구미의 효성은 자동차 타이어용 특수사인 타이어코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동원산자 등 중소기업들도 군용 헬멧과 보트,방탄복 등 다양한 산업용 특수섬유 제품 생산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평균 수출단가도 오름세다.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확대로 기능성섬유가 많은 나일론 제품 가격은 2001년 ㎏당 6.4달러에서 올 상반기 12.3달러로 92.2% 올랐으며 폴리에스터 제품도 같은 기간 ㎏당 5.4달러에서 9.1달러로 68.5% 올랐다.

수출이 활기를 띠면서 설비투자도 덩달아 늘어나 섬유산업이 선순환 구조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원호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부장은 "상반기 섬유기계 수입액은 32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3.9%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섬유산업 부활이 지역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지는 못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섬유산업이 대구 · 경북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5년엔 37.8% 였으나 지금은 5.5%로 떨어져 섬유가 지역 전체를 끌어올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임경호 대구상의 조사부장은 "대구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2008년 현재 1359만원으로 충남의 절반,울산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17년째 전국 꼴찌를 기록하면서 청년실업률이 지난 분기 9.5%로 광주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