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부품업체인 크루셜텍은 연초부터 해외 생산기지를 물색하던 중 베트남을 최종 공장 건설지로 낙점했다. 중국도 후보군에 올려 검토했지만 인건비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베트남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루셜텍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베트남도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2분의 1 수준이고,중국에선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높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사는 1000만달러를 투입해 베트남 하노이 인근 옌퐁공단에 공장을 지어 내년 2월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베트남이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생산기지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베트남 투자는 2008년 이후 감소했으나 올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노사분규,위안화 절상 등 중국의 투자리스크가 커지면서 베트남을 대체 투자지로 선택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늘어나는 베트남 투자
22일 한국수출입은행과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 투자는 30억3069만달러(신설법인 548개)로 작년 같은 기간의 26억2925만달러(신설법인 365개)보다 15%가량 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12억275만달러(신설법인 231개)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베트남이 2억3929만달러로 2위에 올랐다. 금액면에서 베트남 투자는 중국에 훨씬 뒤처지지만 증가 속도만 보면 베트남이 중국을 앞선다. 국내 제조업체의 중국 투자 금액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42%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베트남 투자는 53% 급증했다. 신설법인 수도 중국은 1년 전에 비해 25%(작년 상반기 184개→올 상반기 231개) 늘었지만 베트남은 114%(작년 상반기 28개→올 상반기 60개)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베트남의 투자환경이 좋아진 것보다 중국의 투자환경이 나빠졌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다. 베트남은 2007년까지 국내 제조업체들이 선호하는 투자지였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물가급등과 성장률 하락 등으로 투자매력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투자도 2008년 10억1449만달러에서 작년엔 4억2973만달러로 급감했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베트남의 투자환경이 과거에 비해 좋지 않지만 국내 기업들이 지금의 중국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중국의 투자환경이 변화한 게 베트남 투자가 늘어나는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신노동법 시행 이후 나타난 중국의 임금상승,폭스콘 사건으로 촉발된 노동환경 변화 등 중국시장의 투자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이나 리스크'의 반사효과
냉장고에 들어가는 소형모터를 만드는 에스피지는 지난 봄 중국 쑤저우 공장의 생산설비 70%를 베트남 호찌민 미폭공단으로 옮겼다. 에스피지 관계자는 "대기업은 중국의 내수시장에 주목하겠지만 중소기업은 생산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중기 입장에선) 중국의 기업환경이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P사 관계자는 "2008년 중국 정부가 신노동법을 시행하면서 임금 인상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 상하이 지역의 월 최저임금은 지난해 896위안(약 132달러)에서 올해 1120위안(약 165달러)으로 16.6%나 올랐다. 베트남도 월 최저임금(외국투자기업 기준)을 작년 95만~108만동(약 50~56달러)에서 올초 100만~135만동(약 52~70달러)으로 10%가량 올렸지만 중국에 비해선 절반 내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내 노사분규와 잦은 이직도 문제다. 중국 웨이하이에 진출해 있는 C사 관계자는 "농민공을 100명 뽑으면 한 달도 안 돼 50% 가까이가 그만 둘 정도로 노무관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권 연구위원은 "중국의 투자환경 변화로 노동집약형의 한계 중소기업들은 베트남 등 인건비가 더 싼 지역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