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을 끈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작업이 `변양호 신드롬'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3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상반기 중 우리금융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고,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민영화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영화 계획을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영화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늘어가는 분위기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주변에선 민영화 계획 발표가 당초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달을 넘길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변양호 신드롬' 또 위력 발휘하나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검찰수사를 받고 재판까지 받은 사건은 공직사회 전체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고위공직자들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업무를 꺼리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는 경향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
일각에선 정부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식을 시장의 선택에 맡길 것으로 알려진데 대해서도 `변양호 신드롬'의 영향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배지분 일괄매각이나 분산매각, 합병 등 민영화 방식을 정부가 결정하지 않고, 입찰희망자 스스로 결정토록 하겠다는 것은 결국 고위공직자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결국 시장의 선택에 맡길 것이라면 왜 지금까지 민영화 발표를 늦췄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위가 민영화 방식을 발표하는 시한으로 6월을 선택한 것은 공적자금관리위원 등 전문가들과 어떤 방식의 민영화가 가장 효율적인지를 연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영화 방안에 대한 연구 필요성까지 강조한 금융위가 결국 민영화 방안을 제시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책임회피 목적 외엔 달리 찾기 힘들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 합병안을 제시하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원칙에 맞지 않고, 분산매각을 제시하면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어떤 안을 제시하더라도 비판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복잡해지는 외부상황
최근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우리금융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형국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어윤대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모두 우리금융 합병에 관심을 표명한 상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경제특보를 지낸 이팔성 우리금융회장은 지분 분산매각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금융지주의 회장들은 모두 정권의 핵심과 가까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로 분류된다.

실세 회장들이 금융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당국 입장에선 어느 한쪽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민영화를 진행할 수도 없을뿐더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금융위가 민영화 방안 발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외부요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초 이번달말까지 발표될 예정이었던 민영화 방안 발표가 다음달초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예측도 없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영화 발표가 늦춰지면 민영화 작업 자체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올해를 넘기면 현 정부도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만큼 우리금융 민영화의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리더십을 갖고 민영화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류지복 조재영 기자 koman@yna.co.krjbryoo@yna.co.kr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