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소멸의 운명을 맞았다.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국회 상임위 부결로 끝낼 일이 아니라 본회의에서 전체 국회의원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겠다지만,극적 반전에 대한 기대보다는 사안의 중대성과 결정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지난 10개월 정국의 블랙홀로 갈등과 분열만 증폭시켰던 세종시 논란의 허망한 결론이다.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갈등 상황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최선의 길임에는 틀림없지만,오히려 재앙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다수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다. 특히 포퓰리즘의 강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흔히 그런 함정에 빠져든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생각한 세종시 수정안의 진정성,최선의 대안이었던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그것이 지역과 이념의 갈등,정파 간 이해관계가 얽힌 정쟁으로 비화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자기파괴적 정치구조가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분명 이 정권의 독배(毒杯)였다. 걱정했던 대로 충청권 민심이 등을 돌렸고,그 후폭풍은 지난 6 · 2 지방선거의 여당 참패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이 충청권의 독배로 판명되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충청권이 그토록 원했고,야당이 그 정서에 편승했던 세종시 원안은 2030년까지의 단계적 개발,국고 지출로 한정된 8조5000억원 투입,8만4000명의 일자리 창출과 17만명의 인구 유치,아파트 개발을 통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주된 내용이다. 반면 수정안은 2020년까지의 집중 개발,국고 지출에 과학벨트 조성 및 민간기업 투자를 더한 16조5000억원 투입,일자리 창출 24만6000명에 인구 50만명,행정이 아닌 산업 연구 대학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도시 구상이었다.

9부2처2청의 행정부처를 옮겨 오는 것이 과연 이런 인센티브를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말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세종시 원안은 기본적으로 수도분할이라는 뺄셈의 논리다. 국가균형발전의 정당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이지만,그것이 수도 서울에서 국가행정기능을 제거하고 연관된 인구를 빼내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세종시로 행정부처가 옮겨지더라도 서울은 경제중심으로 남을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 서울의 경제 · 문화 · 교육 경쟁력이 유지된다면 서울은 여전히 살고 싶은 도시이고 사람들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로 몰려든다. 행정기능이 떠난 빈 자리는 기업과 돈이 채울 것이다. 서울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분산시키자는 수도분할이 오히려 경제력 집중,지역불균등을 더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서울이 도시경쟁력을 잃는 상황이 된다면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서울과 수도권 기업들,투자하려는 외국인들은 중국으로 발 길을 돌릴 것이다. 이는 나라 경제,국가경쟁력의 후퇴를 의미한다. 결국 수도를 둘로 쪼개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정치적 논리는 처음부터 허구였다.

무엇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서의 세종시에는 지극히 편협한 지역적 손익계산만 있었을 뿐 글로벌 시대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국제환경에 어떻게 도시경쟁력을 키워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삼을지,정작 중요한 본질의 문제에 대한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앞으로 두고 두고 선진 한국의 발목을 잡게 될것이다. 잘못된 결정의 부담은 당장 우리 세대,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일본의 도쿄를 어떻게 이겨내고,비상(飛翔)하는 중국 상하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서울의 힘을 빼서 충청도의 이익,모든 국민의 복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네것 빼앗아 내것 삼자는 우물안 개구리식 세종시 결론의 끝,그 비극이 두렵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