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콜드케이스:마지막 자동차극장'편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부자(父子)의 비극을 다룬다. 도심 연쇄살인의 범인은 영화광 폴.폴은 자동차극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파산으로 자살한 뒤 비디오숍을 차리지만 그 역시 인터넷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다.

폴은 업종을 바꾸라는 주위의 말을 듣지 않다 빚에 시달리자 결국 채권자를 살해한다. 과거 자동차극장 살인 역시 그의 짓임을 알아낸 형사는 묻는다. "왜 그랬냐."폴은 내뱉는다. "'에덴의 동쪽'같은 고전을 상영하는데 스킨십에만 매달려서."

생각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이다. 힘든 건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직장 내 중간간부의 입지는 좁아진다. 애써 배운 내용은 쓸모없어지고 새로운 건 익히기 힘들다. 상시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면서 평생직장은 없고 연공서열 또한 사라졌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도태된다.

국세청이 2008년 근로소득 연말정산 현황을 분석했더니 30대는 52.4%가 근로소득자지만 40대는 40.3%,50대는 30.1%에 불과했다는 마당이다. 문제는 자영업으로 전환한 이들의 소득이 직장인 시절보다 영 못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근로소득자 중 40대의 연평균 수입은 3400만원이지만 자영업자는 2460만원이었다는 게 그것이다.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액이 근로소득자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생 이모작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은 셈이다.

힘겹게 공부해 취업해봤자 20년도 다니기 어렵다는 계산이다. 이러니 결혼과 출산이 두려울 수밖에.결혼한 경우 생활비에 교육비까지 지출은 늘어나는데 직장을 잃거나 언제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의 심정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년층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40대의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중년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도 남는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 듯 미국에서도 45~54세 자살률이 2년 연속 연령대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마당이다.

일본 정부는 노동안전위생법을 개정,내년부터 직장 건강진단 항목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할 정도다. 절망과 무력감은 불안과 고독,두려움과 외로움은 분노와 증오를 몰고 온다. 중년의 위기는 곧 사회적 · 국가적 위기다. 상시 구조조정과 퇴출만이 능사가 아닌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