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렬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장(사법연수원 33기)
이정렬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장(사법연수원 33기)
"가상자산 이용자들의 피해 방지는 신속한 일벌백계에 달렸습니다"

이정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장(사법연수원 33기·사진)은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상자산 범죄가 범죄자들에게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가성비'는 높은 범죄로 떠올랐음에도 규제와 처벌이 더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단장은 "무법지대로 방치된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수사는 물론 재판과 처벌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지난해 7월 출범한 가상자산합수단의 초대 단장직을 맡아 활약 중이다. 합수단은 급증하는 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 첫 가상자산 전담 수사 조직이다. 검찰은 물론 국세청·금융감독원·금융정보분석원(FIU), 관세청,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등 7개 기관의 전문 인력 30여명으로 구성됐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피카코인', '5800억원대 암호화폐 불법 장외거래(OTC)', '하루인베스트' 등 굵직한 사건을 재판으로 넘기는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2500억원대 가상자산 출금 중지 사태를 빚은 델리오 대표를 기소했다.

○ "방치되던 가상자산 시장, 수사 영역 확대돼"


이 단장은 그간의 수사 성과를 묻자 '수사 영역이 가상자산 범죄 영역 전반으로 확대된 점'을 꼽았다. 합수단은 다양한 유형의 가상자산 사기를 최초로 기소하는 사례들을 쌓아 왔다. 합수단은 △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캠 코인 △전문 업자를 통한 시세조종 △암호화폐를 은밀하게 환전하는 암시장 거래 △불법 가상자산 예치업체 등 시장 내 여러 불법행위를 포착해 재판에 넘겼다.

이 단장은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대표 사건들을 신속하게 수사해 기소할 필요성이 컸다"면서도 "이제 막 한 걸음을 뗀 셈"이라고 했다. 먼저 이뤄진 범죄의 유·무죄가 빨리 가려져야 유사 범죄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관 간 협력도 합수단을 통한 수사의 장점이다. 단일 수사 조직이 아닌 합동 조직이 구성된 것이 유의미한 수사 성과를 내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합수단이 수사한 사건들은 기존 선례가 없었던 최초의 사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유관기관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과 정보기술(IT)·금융에 특화된 검찰 수사관들이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냈다"고 했다. 이어 "진화하는 금융·첨단 범죄에는 범정부 간 통합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했다.

특히 첨단기술을 앞세운 가상자산 범죄에 피해자나 수사기관, 법원 모두 어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거짓을 통해 재산상 이익을 뺏는다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스캠 코인 역시 사람들을 속여서 이익을 얻는 일반적인 사기와 다를 바 없다"며 "장소가 거래소 안이든 밖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담동 주식 부자 사건 또한 자본시장 주가조작 세력이 감시가 약한 가상자산 시장으로 옮겨 온 사례"라고 말했다.
이정렬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장(사법연수원 33기)
이정렬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장(사법연수원 33기)

○ 재판 지연 예방은 필수... "리니언시 고려해야"


이 단장은 올 7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을 보호할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이 법은 연이어 불거지는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지난해 만들어졌다. 이 단장은 "2단계 입법 과정에서라도 관련 공시제도 등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투자자와 업체 간 정보 비대칭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사와 재판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세부적인 제도 마련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범죄는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기소 이후에도 재판 지연이 자주 불거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단장은 "최근 자본시장법에 도입된 사법 협조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가상자산법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가 신속해야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도 신속해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이 단장은 "장기적으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기 범죄에 대해서는 의무적인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고 했다. 그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고 결과를 내는 것은 물론 범죄의 실상을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박시온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