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을 향한 북한의 움직임이 현란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북한이 온몸을 던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중국의 동쪽 출해권이 보장되는 나진이 돋보인다.

나선시를 특별시로 승격한 북한은 중국과 곧 지린성 훈춘과 나선시를 잇는 도로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또 '신압록강대교'를 중국 자본으로 건설하는가 하면,압록강의 '위화도'와 '황금평'개발권을 중국에 넘겼다. 나진항 1호 부두의 사용권도 10년에다 10년을 더 연장해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나선지역 외 7개 도시를 신경제특구로 지정,대외개방의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을 통해 사회간접시설 투자용 100억달러의 유치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지난해 11월 탈퇴한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의 두만강 개발에도 곧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이 같은 맹렬한 대외지향적 움직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두말할 것 없이 북한이 당면한 내부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현재 북한의 내부 경제는 비참한 상황이다. 올겨울에 극심한 식량난이 휘몰아쳤다. "1~2월 평양의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고 옥류관 냉면집도 문을 안 열어 유일하게 문을 연 고려호텔에서 하루 세 끼를 다 먹었다"는 북한 방문 외국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무기 밀매와 같은 북한식 외화벌이 통로는 막힌 지 오래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말 추진한 화폐개혁이 실패해 경제는 더 피폐해졌다. 주민간의 상거래도 마비되다시피 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올해 총 125만t의 곡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가장 큰 목적도 경제지원을 얻기 위함이다. 6자회담에 당장 복귀하는 것보다는 식량문제를 포함,인민생활의 안정이 더 급하다. 올 신년공동사설을 보라.제목부터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북한은 2010년을 "인민생활 향상에 전당적,전국가적인 힘을 집중하여야 할 총 공세의 해"로 규정했다. 내부 경제가 안정돼야 권력 이양도 순조롭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늦어도 김일성 주석 탄생 100년,김정일 위원장 70세,김정은 30세가 되는 2012년까지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스스로 정한 '강성대국건설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남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대남경협을 통해 당면한 경제위기를 탈출하려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다. 그 점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은 북한에 대들보 같은 존재다. 개성관광과 금강산 관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컸으면 관광재개를 조르며 협박까지 하겠는가.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가 금강산 · 개성관광과 관련, "남조선 당국이 생트집을 부리며 관광길을 계속 가로막는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관광사업을 재개하자는 이야기다. '을'의 입장에서'갑'에 대해 퍼붓는 애원의 다른 표현이다.

남북경협은 이제 남한의 손에 달려 있다. 개성공단을 활성화하는 것도, 관광을 재개하는 것도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다. 개성공단 3통(通)을 위해 북한이 요구하는 자재와 장비도 우리 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우리의 우월적 자세가 북한을 우리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실질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신의주와 나진을 통해 북한의 영토를 조차 · 점령해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중국이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을까. 최근 북한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며 다시 갖는 의문이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