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직제한, '절대 불변' 계약일까
기업이 임직원을 채용할 때 일정 기간 경쟁 기업으로의 이직이나 동종업종의 창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고용계약을 맺는 사례가 있다. 대기업 임원의 경우 퇴직 후 고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정 급여를 주는 대신 직급에 따라 1~3년간 경쟁 기업으로의 취업을 금지하기도 한다. 현직과 퇴직 임직원을 불문하고 경쟁 직장으로의 이직과 동종업종의 창업을 금지하는 근로계약 내용을 경업금지조항(non-compete clause)이라고 한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고용계약 체결 시 동종업종으로의 이직을 제한하는 조항을 금지하는 ‘경업금지조항 규칙’을 지난달 발표했다. 120일 이후부터 규정이 적용되므로 이후 돌발변수가 없는 한 미국 기업들은 고용계약에 경업금지조항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다만 15만달러 이상을 받는, 정책결정 지위에 있는 고위 임원은 기존 계약에 경업금지조항이 있더라도 그대로 유효하다.

FTC는 570페이지에 달하는 연구 결과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망라한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규칙 제정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추산했다. 매년 8500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이 창업되고, 향후 10년간 매년 1만7000~2만9000건의 특허 출원으로 혁신이 가속화하며, 매년 근로자 3000만 명의 수입이 3000억달러(약 410조원) 늘어나 근로자당 연간 약 524달러의 임금이 오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작년 1월 FTC는 직원들의 경쟁사로의 이직을 제한하거나 동종업종 창업을 제한하는 3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고용계약서의 경업금지조항 때문에 직원들이 더 낮은 임금과 더 불리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고, 새로 진입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이 직원을 구하지 못해 사업을 접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다.

미국 재계는 경업금지조항을 금지하는 FTC의 규칙 제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기업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업금지조항이 필요하고, 근로자들이 경쟁사로 이직하지 않고 동종업종을 창업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교육·훈련에 투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업금지조항은 근로자의 이직과 창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로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노동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저해하는 폐해가 훨씬 더 크다. 이런 이유로 미국 경쟁당국은 경업금지조항에 대해 법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직종에서 경업금지조항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좋은 대우를 받고 경쟁사로 이직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거나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경업금지조항과 같은 노동시장의 반칙행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