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펜스보이'가 판치는 사회
우리 사회에는 이 대법원장처럼 이념적으로 좌와 우,보수와 진보,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중간 지대에서 좌우를 넘나드는 '회색분자'들이 많다. 좌파정권에선 좌로 갔다가 우파정권 땐 우향우로 사상적 전환을 통해 실리를 챙기는 이른바 '펜스 보이(fence boy)'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울타리 위에 앉아서 눈치를 살피다 필요에 따라 좌 또는 우로 뛰어내리는 이들 펜스 보이는 자기의 신념이나 가치,철학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보다 권력과 돈,명예가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처신을 바꾸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이념적 기회주의는 학문적,정신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학자들 사이에 더 많이 판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랫동안 노동문제를 취재하다 보니 기업의 인사노무담당자나 일선기자 또는 공무원들로부터 "저 교수 어떤(성향의)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평소 마켓 프렌들리(시장친화적),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친화적)를 주장하다 때에 따라선 친노적 성향을 드러내는 등 좌우를 오가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내부 정파싸움으로 권력다툼에 매몰돼 있는데도 펜스 보이들은 빗나간 노조권력을 칭송하는 데 바쁘다. 그래야 노동계의 거부가 없어야 가능한 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 자리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입에서 "지식인들이 용기 없고 비겁하다" "'좌파'는 없고 '잡파'만 무성하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기회주의 풍토를 빗댄 것이다.
노조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펜스 보이들은 '이념적 자유'를 누리며 실리를 챙기지만 그 대가로 기업들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고 부자 노동자-가난한 노동자 간에 계급갈등이 더욱 커진다. 얼마 전 노동 관련 교수들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 현대자동차 노조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했는데 느닷없이 "왜 노동운동을 매도하느냐"는 어느 유명 대학 교수의 반격을 받았을 땐 '어쩜 이렇게 노동현장을 모를까'하는 생각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잘못된 노동운동에 대해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할 지식인들이 '노동운동 엔터테이너'로서 인기영합적 펜스 보이로 머물러 있는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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