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아카몬 GM대우자동차 사장이 최근 모래시계를 여러 개 구입했다고 합니다. 부사장급 임원들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책상에도 놓았다는군요. '유한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랍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회의나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하더군요.

아카몬 사장은 유동성 위기를 맞은 GM대우를 이끌기 위해 지난 10월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야구로 따지면 대량실점 위기에 몰린 팀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한 구원투수인 셈이지요.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원회의 조직과 성격을 바꾼 것입니다. 20여 명이 참여하던 경영회의 인원을 종전의 절반 정도로 줄였습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겠지요. 동시에 "실행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아카몬 사장은 시장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장소로 '현장'을 택했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약 2주간 경남 창원, 전북 군산, 충남 보령 등 각 지방 공장을 수시로 찾아갔습니다.

노조와의 대화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경영회의 내용을 편지를 통해 노조에 전달했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선 노조의 협력 없이 위기를 돌파하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지요.

그는 사내 현안을 직원들과 이메일로 소통하는 데도 열심입니다. GM대우 최고경영자(CEO)의 이메일 발송 횟수가 아카몬 사장 취임 이후 3배 이상 늘었다는 후문입니다.



아카몬 사장이 이끄는 GM대우는 현재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난달 모기업인 GM으로부터 4912억원의 유상증자를 받아 급한 불을 껐지만,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이 훨씬 더 많습니다. 주거래 은행이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GM대우에 대한 대출금을 모두 회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고요.

사실 산은과의 갈등은 GM대우 측이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환관리 실패로 작년에만 87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죠.

GM대우가 내수 시장에서 부진한 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GM대우는 모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생산량의 90% 이상을 수출하는 '손쉬운' 길을 택하면서 국내 시장엔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경쟁사인 현대 · 기아자동차나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이 강력한 내수 점유율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해 주지요.

GM대우가 일어서야 현대 · 기아차가 과점하고 있는 내수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소비자 입장에선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아카몬 사장이 연말을 맞아 사내 조직을 현장경영, 신속경영 체제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은 GM대우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시도라는 생각입니다. 9회 말 상황에서 등판한 구원투수 아카몬 사장이 '특급 소방수' 역할을 잘 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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