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주 '추석 민생 및 생활물가 안정대책'을 발표한 이후 정유업계의 속앓이가 커졌다. 연일 고공행진 중인 기름값 안정을 위한 조치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과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정유사의 유통 계통별 공급가격을 공개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정부는 향후 정부 기관과 소비자단체,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유가 모니터링 태스크포스의 논의와 업계 협의를 거쳐 석유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지난 5월 관련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강공으로 밀어붙인 석유제품의 정유사별 주유소 공급가격 공개조치가 기름값을 끌어내리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자 나온 추가 조치다. 현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는 휘발유 경유 등 전국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의 평균 가격만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추가 대책이 실행되면 정유사들은 중간 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일반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 등 석유제품 공급가격을 유통 계통별로 세분화해 공개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회사들에 이마트나 홈쇼핑 대리점에 각각 공급하는 TV 가격을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유독 정유사에만 들이대는 엄격한 가격공개 규제책은 기업의 생명인 영업기밀을 지나치게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번 대책의 기대효과는 둘째치더라도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규제에 대한 정유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지나쳐서는 물론 안 된다. 그렇다고 기름값 잡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들의 영업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지난주 기준으로 보통휘발유 가격에서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 각종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52.5%에 달했다. 일반 소비자들이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고 내는 요금의 절반 이상이 세금이란 얘기다. 유류세 개편 없이는 큰 폭의 기름값 인하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이 가진 것은 좀체 내놓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아닌지 정부가 스스로를 뒤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정호 산업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