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묵동에서 삼겹살 전문점을 운영하는 여주인 Y씨(38)는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개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투자금 5000만원을 날리고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매출은 개업 초기 하루 30만원에서 10만원 선으로 떨어져 인건비는커녕 월세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종업원을 내보내고 무더위 속에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15시간씩 일하고 있으나 개선될 조짐이 없다. 서울시로부터 창업자금 2000만원을 지원받아 매달 이자와 원리금으로 55만원씩 상환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신용카드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고,월말 결제가 밀리면서 Y씨 부부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25평짜리 아파트에서 방 2개짜리 반지하 연립주택으로 최근 집을 옮겼고,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학원도 끊었다는 Y씨는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Y씨 부부는 5년 전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정이었다. 남편은 H자동차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가 사업을 하겠다고 퇴직했다. 하지만 특장차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창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3개월짜리 창업교육을 받은 뒤 삽겹살집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하철 역세권이라 문만 열면 생계비는 충분히 벌 것으로 판단하고 쉽게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본지와 중기청이 3년째 공동 진행하는 자영업컨설팅을 하다보면 Y씨 같은 자영업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전문기술이 없어도 식당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투자비를 날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의 80%가 외식업이지만 성공 확률은 20%도 안 된다. 전국에서 문을 닫는 외식업소는 월 2만개를 넘는다. 식당뿐 아니라 동네 슈퍼들도 고사 직전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상권 진출이 사회적 논란이 된 것도 동네 슈퍼들의 장사가 워낙 안 되는 게 배경이다. 2001년 11만개를 넘었던 동네 슈퍼(150㎡ 이하)는 작년 말 7만9200개로 감소했다.

올 하반기 들어 주가 등 일부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으나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자영업자 수는 7월 현재 606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23만명이나 줄었다. 더 심각한 것은 내년 이후 경기가 본격 회복된다 해도 600만명을 넘는 자영업자들의 도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지난 20일 정부가 '친서민 세제지원방안'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세제지원책을 발표했지만 그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자영업자 스스로가 살길을 찾아야 한다.

시장경제 체제에선 대기업이건 자영업자건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서울의 외식시장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와 차별화된 상품으로 '성공 신화'를 쓰는 업소들도 많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적했던 삼청동이나 안국동 뒷골목에서 지역특성을 살린 매장을 만들어 떼돈을 버는 동네가게들도 늘고 있다. '놀부'나 '원할머니보쌈'처럼 한식을 현대화해 10여년 만에 허름한 식당에서 3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프랜차이즈업체들도 나타났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한 발 앞서 시장 변화를 읽고,신시장을 개척해 경쟁에서 이기는 길 외에 다른 '묘수'는 없다. 자영업도 예외는 아니다.

최인한 생활경제부 차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