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으로 예고된 국제회계기준(IFRS) 의무 도입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요구가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회계작성 방식이 제조업체들과 다른 조선 · 건설업계와 중소기업들이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조선협회는 조만간 정부에 IFRS 의무도입 시기 연장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고,건설업계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정부가 IFRS 의무도입 일정을 공표한 것은 2007년.하지만 세법 등 관련법률이 아직도 정비되지 않으면서 일부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전년도 재무제표와의 비교 공시조항이다. 2011년부터 이 제도에 맞추기 위해 기업들은 당장 내년치 IFRS용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새로운 회계 시스템을 완벽하게 마련해야 하지만,준비할 시간이 태부족이라는 하소연이다.

특히 조선 및 건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제품 판매 기준으로 매출을 따지는 일반 제조업체들과 달리 작업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계산하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한 회계 시스템이 필요한 탓이다. IFRS를 도입하면 유형자산 감가상각 기간이 10년에서 30년으로 바뀌게 돼 원가 계산 방식과 미래 원가 기준 등 작업진행률 계산에 필요한 항목들이 수없이 변경된다.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중견 ·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아직 도입 준비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상장사 10곳 중 7곳은 IFRS 도입 준비가 안돼 있다고 밝혔다. '왜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빨리 IFRS를 도입해야 하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상장기업에 대해 IFRS를 2014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일본도 2015년부터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퇴직급여충당금만 수천억원 늘어나

회계기준이 국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퇴직급여충당금(부채) 조항이 단적인 예다. 현행 국내 기업 회계기준에서는 직원들이 일시에 퇴직할 경우를 가정한 퇴직급여충당금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IFRS를 도입하면 유럽처럼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식 퇴직급여 방식으로 산정해야 한다. 현실과 맞지 않는 회계 변수를 장부에 대거 포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퇴직급여충당금이 훨씬 늘어난다는 것도 기업들엔 골칫거리다. 수백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씩 추가로 퇴직급여부채를 떠안아야 하는 기업도 있다. 임직원이 2만7000여명인 A사의 경우 IFRS를 도입하면 퇴직급여충당금이 당장 수천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IFRS에 따른 퇴직급여충당금은 선진국형 연금제도를 적용하는 나라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퇴직급여 산정시 청산가치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의 경우에는 실상이 왜곡될 수도 있다"며 "유형자산의 잔존가치 계산 등 국내 세법과 마찰을 빚는 다른 문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작업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계산하는 조선 · 건설업계의 회계 장부 작성이 더 복잡해질 가능성은 있지만,IFRS 도입 자체를 유예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퇴직급여충당금 문제는개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장창민/백광엽 기자 cmjang@hankyung.com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기업의 회계 처리와 재무제표에 대한 국제적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 마련한 회계기준.2001년 전 세계 다국적 기업에 의무 사용이 권고됐다. 이 기준을 도입하면 기업들은 분기마다 연결재무제표를 중심으로 공시해야 하며 여러 회계기준을 변경해야 한다. 한국도 대외 신뢰도 향상을 위해 2007년 도입을 공표했다. 국내 상장회사는 2011년부터 의무적으로 이를 전면 도입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