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많이 사들이는 외국인 '큰손'들이 '조세천국' 가운데 한곳인 룩셈부르크에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로 세력이 위축된 헤지펀드보다는 장기 투자 성격의 롱텀펀드들이 이곳에 많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투기성 자금이 아닌 양질의 자금이 들어와 증시 수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외국인 주식 매수가 주춤해지고 있지만 한국 관련 글로벌 펀드에는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2분기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가시화될 경우 룩셈부르크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사자'가 다시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룩셈부르크에 롱텀펀드 포진

18일 금융감독원의 '5월 외국인 투자자 증권 매매 동향'에 따르면 룩셈부르크 국적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9597억원어치의 주식을 사고,1조866억원을 팔아 8731억원을 순매수했다. 지난달 외국인 전체 순매수(4조1356억원)의 21.1%에 달하는 것으로,국적별로 가장 큰 규모다.

룩셈부르크 소재 외국인은 지난 3월부터 순매수를 지속,3개월 동안 1조6044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에는 코스닥시장에서도 276억원을 매입해 순매수 1위를 기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럽 지역에서 공모펀드를 만들 때 룩셈부르크에서 인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유럽의 공모펀드가 룩셈부르크 국적 투자자들의 주요 자금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헤지펀드나 투기성 자금이 아닌 질이 좋은 자금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승원 UBS증권 전무는 "룩셈부르크는 펀드 관련 규정이 까다롭지 않고 세제 혜택이 뛰어난 '조세천국'으로 알려져 헤지펀드들도 근거지로 활용해 왔다"며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들이 아직 고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 투자하는 롱텀펀드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럽 투자자들이 한국의 경기회복세를 주목하고 있는 게 룩셈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유럽계 자금의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배경이란 분석도 나왔다. 임경근 ABN암로증권 상무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국내 기업의 투자설명회(IR) 행사에서 유럽 투자자들이 한국의 경기회복세와 기업 실적 개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기업들에 비해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 관련 펀드 자금 유입 지속

지난달 룩셈부르크에 이어 케이맨아일랜드와 영국이 각각 7280억원과 5140억원을 순매수해 2,3위에 올랐다. 올 4월 약 2년 만의 순매수로 최대 매수세력이었던 미국 국적 투자자들도 4637억원어치를 사들여 2개월 연속 순매수를 지속했다.

이달 들어서도 외국인은 매수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 15일부터는 매수세가 주춤해지는 양상이다. 안 전무는 "코스피지수 1400선에서 새로운 호재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일부 외국인이 지난 3월 이후 주가가 뛴 것에 대한 차익 실현에 나선 데다 2분기 실적이 주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인지 확인하겠다는 심리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펀드 환매가 나타나고 있지만 해외에선 펀드로 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외국인의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며 "2분기 실적 개선이 확인되면 자금이 풍부한 외국인이 매수세를 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 뮤추얼펀드를 대상으로 자금 유 · 출입을 조사하는 펀드리서치회사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에 따르면 한국 관련 4개 펀드인 이머징마켓펀드,아시아펀드(일본 제외),인터내셔널펀드,퍼시픽펀드 등에 이달 11일까지 한 주 동안 41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이에 따라 지난 3월11일 이후 13주 연속 자금 순유입이 진행됐다.

일각에선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외국인이 최근 신흥시장 전반에서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점을 들어 이 같은 펀드 자금 순유입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매수세가 쉽게 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