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귀족들은 만찬을 끝낸 뒤 와인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좌담회나 연구발표회로 이해하는 '심포지엄'은 그리스어 '심포시온'으로,주연(酒宴) 또는 대화를 나누며 같이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남자로 제한된 참석자들은 모두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소파에 앉아 노예들이 발을 씻겨주는 동안 달달한 와인을 즐겼다. 로마인들도 '심포지엄'과 비슷한 공식 연회에서 와인을 마셨다. 그리스와의 차이점은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셨으며 제한적으로 여성의 참여와 음주도 허락됐다. 로마의 서민들은 주로 시큼한 레드와인에 물을 탄 것을 마셨지만 상류층은 소량 생산되는 단맛이 많은 와인을 좋아했다. 두 나라 모두 당도와 도수로 와인을 구분했는데 독하고 단맛이 많은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겼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단맛나는 와인에 대해 현대 소비자들은 초보자가 마시거나 값싸고 질이 낮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세월에 따라 기호도 변했지만 생산자들의 짧은 생각 때문에 오해가 생긴 면도 있다.
갓 발효된 와인은 맛이 거칠고 씁쓸해 숙성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마시기에 부적절하다. 그러나 숙성기간이 길어지면 자금 회전이 늦어 생산자들의 재정 부담이 커진다. 단맛은 어린 와인의 거친 질감과 튀는 타닌,산도 등을 감싸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와인에 단맛이 강하면 오래 숙성하지 않아도 마시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런 효과를 노려 의도적으로 달착지근한 와인을 많이 생산한 결과 단맛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나빠졌다.
특히 당도에 민감한 와인이 샴페인이다. 샴페인의 당도는 코르크로 봉인하기 전 도사지(Dosage) 단계에서 쉽게 조절이 가능하다. 더구나 숙성기간이 길어 생산자들은 달착지근한 샴페인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 약하다. 샴페인의 당도를 표시하는 등급과 명칭은 다양하다. 가장 단맛이 많은 것은 '두(Doux)',거의 당도가 없으면 '브뤼 나튀르(Brut Nature)'로 표기한다. 중간에 '섹(Sec)''브뤼(Brut)' 등 5등급이 더 있어 샴페인에는 모두 7가지의 당도 등급이 있다.
그러나 팔리는 샴페인의 95% 이상이 '브뤼'급으로 이 명칭의 유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영국은 전통적으로 샴페인 최대 수입국으로,프랑스 생산업자들은 영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출한 샴페인은 대부분 당도가 매우 높은 것들이었다.
영국인들은 이런 달콤한 샴페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다음부터는 좀 더 달지 않은 샴페인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 생산업자들은 영국의 끈질긴 요청에 굴복해 당도를 한참 낮춘 샴페인을 보냈으나 영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달지 않은 샴페인을 주문했다. 아주 미미한 수준까지 당도를 낮추었음에도 영국의 수입업자들은 더 달지 않은 샴페인이 아니면 인수를 거부하겠다는 강력한 통첩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민족감정에다 예술과 미식 기준에서 영국인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자부하던 프랑스 샴페인 제조업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그러나 고객으로서 영국시장은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단맛이 거의 없는 샴페인을 만들었지만 여기저기서 불평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기랄,영국 촌놈들! 제대로 샴페인 맛도 모르는 야만인들 아냐?"라고 말이다.
프랑스어로 '브뤼',영어로 '브루트(Brute)'라는 단어에는 '짐승,금수와 같은 또는 거친,무감각한,야만적인'이란 뜻이 있다. 이때 사용한 단어가 유래돼 달지 않은 샴페인을 '브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주 단맛이 많은 귀부(貴腐 · noble rot)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인기가 높고 찾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단맛이 조금 있는 와인도 나름 차별화된 맛이 있으므로 열린 자세로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