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마카크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원숭이는 새끼일 때 고립상태로 자라다가 성년이 되고 나서 원래의 무리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무리의 다른 원숭이들이 '그녀'와 전혀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겁니다. 그녀도 어쩌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수컷을 물어버리곤 했지요.

암수가 서로 외면하고 멀리하니 새끼를 갖게 하려면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컷 새끼가 태어났지만,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어미가 새끼의 양식을 빼앗아 먹고 밀어내기도 했지요. 그 결과 새끼 또한 청소년기가 지난 뒤에도 다른 암컷에게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고 외톨이로 떠돌았습니다.

프랑스의 신경의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 보리스 시륄니크가 《관계》(궁리 펴냄)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얘기입니다. 생애 초기 엄마와 애착을 맺지 못하면 사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성적(性的) 혼란까지 겪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지요.

그는 태아 상태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에서 형성되는 '관계'들을 해부하면서 사랑과 애착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일깨워줍니다. 특히 부모자식 간 '보살피는 사랑'과 남녀 간 '열정적 사랑' 등 두 종류의 사랑과 이 속에서 형성되는 애착관계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합니다.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아버지와의 관계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엄마는 임신 6개월째부터 태아의 정신세계에 자연스럽게 감각적 흔적을 남기며 애착을 형성하지만,아빠는 아기가 태어나서 6개월쯤 돼야 제대로 인식된다는군요. 엄마가 아기의 몸과 무릎을 아빠에게 향하게 하고 부드럽게 '아빠야'라고 말해주면 아기가 최초의 감각 틀을 잡게 되는데,이때 엄마의 행동은 아기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마카크 원숭이의 비극과 달리 인간은 애정 결핍을 치유할 힘을 갖고 있지요. 저자도 2차 대전 때 부모가 집단수용소로 끌려간 후 버려진 채 자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관계에 따른 장애를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