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사랑과 배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소년에 관한 성장소설이자 독일의 2차대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죄의식과 통합에 관한 사회소설이다.

미국 제작사 와인스틴 컴퍼니, 미라지 엔터프라이즈와 영국 출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영화화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전반적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 왔다.

15세 소년 마이클(마이클 버그)은 길을 가다가 열병으로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케이트 윈즐릿)의 도움을 받는다.

둘은 이후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며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한나는 관계를 가지기 전 책을 읽어달라고 청한다.

어느 날 한나는 갑자기 사라지고 8년이 흐른다.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했다가 피고인 신분의 한나를 발견한다.

줄거리에는 변화가 없지만 제작진은 할리우드식 각색을 단행했다.

열정과 죄책감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원작 속 '미하엘'의 복잡한 감정은 영화 속에서 '마이클'의 운명적인 사랑으로 그려졌다.

할리우드의 손길은 무엇보다 나치 전범 문제에 닿아 있다.

원작 소설은 나치의 범죄에 무의식적으로 가담한 평범한 독일인에게 변명의 기회를 줘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홀로코스트를 독일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영화 제작진은 이런 소설의 정치성을 끝까지 짊어질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도덕성의 잣대와 단죄에 대한 의무감을 버리지 못한다.

미해결된 수용소 문제를 토론하고 단죄받지 못한 전범들을 비판하는 법학도들의 설전은 길게 묘사됐다.

중년에 들어선 마이클(랄프 파인즈)이 가해자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도 추가됐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 5개 부문에 후보 지명되고 수상까지 한 이유는 용서를 거부하는 생존 유대인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값싼 감동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를 통해 탄탄한 연출 실력을 보여왔던 달드리 감독은 종전 후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전쟁에 휩쓸린 개인의 비극, 꺾이지 않는 인간의 자존심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소년과 연상의 여인간 사랑은 아름답게 그려졌으며 이야기의 흐름은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매끄럽다.

30대부터 60대까지 한나를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의 연기도 흠잡을 데가 없다.

복잡한 사연과 상처를 가진 모습을 열연한 윈즐릿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6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