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문화를 국제화·세계화시키는데 연간 500억~6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현대미술관은 정부와 기업이 적극 후원해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생산해내는 전초기지역할을 하더군요.옛 기무사터에 들어설 현대미술관 분관을 국제적 수준에 맞춰 신축하고 기업들의 상품 디자인 경쟁력의 원천 기술을 제공할 겁니다.”

21일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는 처음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배순훈 관장(67)은 최근 서울 반포 JW 메리어트아트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기업인 출신이 미술관 CEO로 가는 것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것 같아 책임이무겁다”면서“국립현대미술관이 기업들 상품디자인의 기초 철학을 제공하는데 주축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고,서울대 공대,매사추사공대(박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배 관장은 1976년 대우중공업 기술본부장으로스카우트되면서 대우와 인연을 맺은 후 대우조선 부사장과 사장,대우전자 사장,회장을 두루 거친 전문경영인 출신이다.1993년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 세탁기’를 크게 성공시켜 ‘탱크’란 별명을 얻었으며 당시 인기 탤런트이던 유인촌 장관과 함께 ‘탱크주의’광고에 출연했다.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국민정부 시절 정보통신부장관과 카이스트 부총장을 지냈다.

그는 “실장급(1급) 공무원으로 장관 출신인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맡은 것은 ‘파격’ 일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인데 보수나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며 “나이가 들면서 우리 국민의 저력을 봐온 노인으로서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 전 관장은 미술행정 경험은 없으나 미술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쌓아왔다.중고교생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고 서울대 공대 재학시절에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생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그러다가 화가 신수희씨(65)와 결혼했고,아들 정완씨(35)는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배 전 관장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현대미술관은 정부와 기업이 적극 후원해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생산해내는 전초기지역할을 한다”면서 “옛 기무사터에 들어설 현대미술관 분관을 국제적 수준에 맞춰 건립하고 기업들의 상품 디자인 경쟁력의 원천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얼마 전 과천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리적 위치는 매우 좋습니다.주변에 서울 어린이대공원과 경마공원 등 얼마든지 관람객을 유치할 만한 여건을 가지기에 충분하지만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숫자는 매우 미비 해보였거든.우선 관람객의 눈길을 붙잡을 만한 전시가 없는데다 실제 아무리 좋은 전시기획을 하더라도 관람객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미술관 건물도 현대적 미감을 전혀 살리지 못한 마치 박물관같더군요.미술문화 선진화 실현의 일환으로 지정할 옛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 문제 대해서는 국제적인 기준에 맞도록 지을 것입니다.”

그는“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인 전시공간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500억~600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며“정부도 예산을 늘려야겠지만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미술문화 교육사업을 펼쳐 후원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의 CEO들은 문화사업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심지어 시간을 내어 배우러 다니는 CEO들이 늘어나고있구요.그들에게 다양한 문화체험과 지식을 전달하여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는 자금도 유치하고 홍보도할 수 있는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미술관장의 자질로 그는 ‘미술에 대한 전문성’과 ‘경영마인드’를 꼽았다.

“CEO 출신이기 때문에 조직의 시스템이 일을 하도록 할겁니다.미국 미술관의 경우 전시 기획은 큐레이터에게 맡기고 관장은 후원금 모금에 집중하더군요.유럽 쪽은 큐레이터 출신관장이 기획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구요.어느 쪽이 더 좋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가지 모두 갖춰지도록 기본을 만드는데 주력하려고 할까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미술시장이 많이 침체 되어 있는데 이를 일으킬 만한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경매회사에 출품된 그림들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대단치 않은 것 같은데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은 것같다”며“경매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작품 가격의 ‘거품’을 빼야 시장이 탄탄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