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꽃보다 남자? 꽃보다 돈?
불황 찬바람속 부자판타지 커져…멀리도 가까이도 지나치면 안될 '돈'
한 일간지에 연재했다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한 '문학터치 2.0'의 첫 장 제목이 '청년백수 전성시대'인데,독하고도 불온한 현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식이다. "넌 매일 놀면서 무슨 돈으로 먹고 사냐? 그러니까 조금씩 먹잖아.많이 벌어서 많이 먹으면 되잖아.그거나 이거나. "(구경미,'봉덕동 블루스') "(허벅지를)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천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 "(박민규,'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 이런 게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김애란,'도도한 생활')
생뚱맞겠지만 요즘 의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떠오른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지만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 드라마가 10대뿐만 아니라 20~30대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이유가 혹시 부자에 대한 선망과 상류 계층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 때문인 것은 아닐까. 순정남인 데다가 부자이기까지 한 것이 아니라 부자인 데다가 순정남이기까지 한 남자를 거부하기에 우린 너무 가난하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는 또 다른 통계는 최근 결혼정보회사에 여대생들의 회원 가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황기에는 결혼을 취업으로 생각한다는 소위 '취집(취직+시집)' 현상이 유행한다지만,그 연령대가 점점 낮아져서 대학교 2,3학년 여학생들도 직접 가입한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제목으로 '꽃보다 돈'이 더 어울릴 이 드라마는 더 이상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소비적 향락을 반영한다. 생산보다 소비에 의해 정체성을 형성하면서,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부러움과 패배의식을 일상화한다. 그럴수록 부자에 대한 판타지는 더욱 강해진다. 누군들 돈을 벌지는 않고 쓰고만 싶지 않을 것인가.
이런 맥락에서라면 예전에 인기 있었던 CF의 "부자되세요"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될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귀족집단인 드라마 속 F4처럼 처음부터 부자로 태어나야만 부자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자는 '되는 것(becoming)'이 아니라 부자로 '존재하는 것(being)'처럼 오인된다.
돈은 태양과 같다. 멀리 가면 얼어 죽고,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는다. 돈 없이도 잘 산다는 말은 위선이고,돈밖에 믿을 것 없다는 말은 위악이기 쉽다. 그러나 위선이나 위악도 웬만큼 여유가 있을 때 부리는 것이다.
작년 4분기 GDP가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서 성장을 멈추었다는 통계가 발표되고 있는 만큼 올해에는 모쪼록 각 가정으로 황금송아지들이 떼로 몰려오면 좋겠다. 부자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년 설이 두렵지 않도록.다시,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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